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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Oct 18. 2024

책모임하려고
독서합니다

“안 해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책모임 세상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책 모임에서 신입 회원분들께 드리는 말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냐고요? 아뇨,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이 좋은 걸 어떻게 한 번만 하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부담스러워서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라도 일단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다신 안 해!’ 하실 분은 없을 거예요.  


같은 책이어도 혼자 읽는 것과 책모임을 통해 같이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혼자 읽었을 때는 영 안 읽히고 별로였던 책이었는데 책모임을 통해 뒤늦게 반하게 되기도 하고, 읽으면서 좋았던 책이 책모임을 마치고 10배쯤 더 좋아지기도 해요. 한 권을 읽었는데 세 권, 네 권을 읽은 것 같은 풍성함은 덤입니다.

가끔 “책모임을 가서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 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은 아마 책모임을 안 해보신 분일 거예요.


완전히 모르시는 말씀! 일단 시작해 보시면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넘쳐서 고민이실 걸요?


어릴 때 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고 가정해보세요. 거의 한 10년만이죠. 처음엔 잠시 어색함하지만 어느새 할 이야기가 많아져 두런두런 다정하게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마 둘이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친했던 그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분명 같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기억은 서로 일치해서 반갑고, 어떤 기억은 각자 너무 달라 놀라기도 하죠. 서로 오해했던 부분이 풀리기도 하고, 몰랐던 부분을 대화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해요. 그리고 헤어질 땐 또 그렇게 아쉽습니다.  


갑자기 왜 옛 친구 이야기냐고요? 전 책 모임이 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특정한 사건을 같이 경험하고 같은 장소에 방문하거나 같은 것을 보고 듣습니다. 간접경험이긴 하나,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추억을 가지게 되는 셈이죠. 같은 추억을 갖는다는 건 상당히 반갑고 즐거운 일이에요.


책 모임에 오셔서 “저는 이야기를 잘 못해서 주로 듣는 역할을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 참 많이 만나보았는데요. 막상 책 이야기를 나누면 눈이 초롱초롱해지셔서 조근조근 어찌나 이야기를 잘 하시던지요. 어릴 적 한 동네에 살았던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죠.




책모임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추억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좋았던 문장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이야기하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어쩜 서로 그리 다른지요. 같은 문장과 같은 장면을 고르는 일은 손에 꼽습니다.


한 번의 책을 읽으며 '와, 이 책에서는 이 문장이 최고의 문장이야. 이걸 빼고 어떻게 다른 걸 고르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특정 문장에 홀딱 빠졌습니다. 그런데 책모임에서 서로 좋았던 문장을 나누는데, 어머나, 제가 고른 문장과 같은 문장을 고른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오히려 다들 책에 그런 게 있었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한 번 읽을 때 다르고, 두 번 읽을 때 다르잖아요.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지금의 나의 기분, 내가 가진 배경지식 등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어요. 하물며 같은 사람이 읽어도 이런데 서로 다른 사람이 읽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죠? 만약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네, 축하합니다. 영혼의 단짝을 만나셨습니다.


서로 다르게 꼽은 문장과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하마터면 이 책에서 놓치고 지나칠 뻔했던 보석 같은 메시지를 재발견하기도 합니다. 책모임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두 권 세 권을 읽었을 때처럼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유겠죠?


독서의 최종 목표는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읽을 땐 감동하고 깨달음을 얻고 ‘나도 달라질 거야’ 하며 마음으로 아우성을 치지만 그 감흥이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하지만 책모임에서는 달라요. 서로 느낀 것, 깨달은 것, 배운 것을 나누고 앞으로의 다짐을 고백하듯 이야기다보면 실천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일종의 공개선언 효과인 셈이죠.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스티븐 헤이스 박사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다고 해요. 스티븐 박사는 학생들을 세 그룹을 나눴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자기가 받고 싶은 점수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말하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목표 점수를 마음으로만 생각하게 했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목표 점수에 대한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목표를 세우지 않은 거죠.


실험 결과 어떤 그룹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첫 번째 그룹이겠죠? 이건 우리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 사이의 점수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선언하지 않은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과 진배 없다는 결론이죠.


그렇습니다. 혼자 책을 읽었다면 읽을 당시에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열정이 넘쳤더라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도 그랬던 내 마음 모르니까, 안 지켜도 나만 좀 머쓱해지면 되는 일이죠. 사실 머쓱해질 틈도 없이 결심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만요.


하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결심이나 깨달음에 대해 나누고 나면 일종의 공개선언효과가 생겨 삶에 적용하며 실천해나갈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OO님, 지난 모임에서 매일 달리기하실 거라고 하셨잖아요. 하고 계세요?” 하고 다른 회원 중 누군가가 불쑥 물어올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오랫동안 책은 혼자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책 읽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어색할 거 같았고,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죠. 책이라는 건 누구랑 공유할 수 없는, 오로지 나와 저자, 단둘이 소통하는 내밀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책모임의 장점은 사실 저의 간증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전 ‘책모임을 하려고 독서를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책모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입이 간질간질해서 자랑하고 싶고,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 싶고 그렇잖아요.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권합니다.

책을 꾸준히 읽고 싶으시다면, 책을 조금 더 깊게 읽고 싶으시다면, 실천하는 독서를 원하신다면 여러 분이 지금 하실 일은 바로 ‘검색’입니다.


키워드는 ‘책모임’이 되겠네요. 자매품 북클럽과 독서모임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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