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마다 내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분 좋은 하루도 있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그리 만만하지 않죠.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의 복병과 맞닥뜨려 기진맥진한 상태로 하루를 마감할 때도 있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아무 일 없는 심심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보장된 즐거운 시간’이 있어요.
아무리 바쁜 하루였어도, 책은커녕 숨 돌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보낸 날이었어도 자기 전에 책 읽기를 거르지 않습니다. 하루치의 고민과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책에 집중하는 그 시간 덕에, 그날 참 별로였어도 어느새 잊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하루네’ 하는 안심하는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이 보장된 안온함을 위해 잠자리 독서 책은 아무 책이나 고를 수 없어요. 긴장감을 주는 책보다는 편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책,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멈출 수 없는 책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편입니다. 분명한 건 그 시간에 읽는 책은 제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책이라는 점이에요. 예전에 읽고 좋았던 책을 그 시간에 재독하기도 하고, 새 책을 읽다가도 ‘어머, 이 책 좋다’ 싶으면 일부러 슬그머니 책 읽기를 멈추고 ‘오늘 자기 전에 읽어야지’ 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잠자리 독서를 하는 게 저만은 아닌가 봅니다. 제가 유일하게 아는 프랑스 관용어가 하나 있어요. ‘livre de chevet’, 애독서라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침대 머리맡의 책'이에요. 프랑스 사람들도 좋아하는 책은 자기 전에 읽는 모양이에요. 아끼는 책을 야금야금 자기 전에 읽고 싶어 하는 제 마음과 꼭 닮은 단어라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다시 한 번 잠자리 독서 영업(!)을 시작해볼게요.
상상해보세요.
유독 긴 하루였습니다.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죠. 그날 하루치의 고민과 걱정을 씻어버리듯 따듯한 물로 몸을 씻어요. 기분 좋은 향이 나는 로션을 몸에 바르고, 어디 한 군데도 조이지 않는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침실의 전등을 끄고 침대 옆에 작은 조명하나만 딸깍 켭니다. 그리고 포근한 이불 안으로 들어가 책을 펼칩니다. 생각만해도 달콤하고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지 않나요?
어떤 하루를 보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책을 읽을지는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 참 든든해요.
책이 주는 보장된 편안함, 그 덕에 하루를 마감하며 눈을 감을 땐 슬며시 기대하게 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