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를 아시나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세 개의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해 네 명의 일꾼으로 시작합니다. 일꾼들은 열심히 자원을 캐고 자원으로 건물을 짓고 병력을 생산하여 전쟁을 벌이죠. 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있기에 주워들은 풍월일 뿐.
결혼하고 초기에 남편이 이 스타크래프트 중계방송을 시간 날 때마다 보는 걸 당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보는 거죠? 야구나 축구처럼 누가 있어야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면 언제든지 집에서도 가능한데, 무슨 이유로 남이 게임하는 걸 보는 건지 납득이 안 되더군요.
보다 못해 물었습니다.
“남이 게임하는 걸 왜 보는 거야? 직접 하면 했지, 왜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걸 봐?”
게임을 하면서 전략을 배운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고 지는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 저는 이런 말을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완전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 남편의 한 마디에 “응, 알았어. 앞으로도 쭉 봐.” 할 수밖에 없었죠.
그 한 마디는 바로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책 소개해주는 책 보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직접 읽으면 읽었지, 왜 다른 사람 책 읽는 이야기를 읽어?”
아하! 그랬군요. 게임 팬이라면 응당 봐야겠네요. 암요, 암요. 봐야 하고말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에 대한 책을 안 볼 수 없듯.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합니다. 어떻게 아니 좋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책’이라는데요. 제곱으로 좋아할 수밖에요.
우선 좋아하는 작가들의 독서에세이는 무조건 읽고 싶어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쓴 분들은 평소 어떤 책을 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행여나 책 속에서 내가 읽었던 책을 만날까 싶어 기대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러다 진짜 같은 책을 읽었단 사실을 알게 되면 일치되는 취향에 기뻐 하트 모양 눈을 하고 ‘역시, 작가님’ 하는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책에 나온 책 중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을 만나면 읽던 책을 ‘잠시 멈춤’ 해두고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지 확인하거나,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쏙 넣습니다. 독서에세이 한 권 읽고 나면 온라인 장바구니가 빠방하게 가득 차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요즘은 독서모임 책도 그렇게 재미있어요. 실제로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 다른 모임 분들은 무슨 책 읽나, 어떤 이야기 나누나 궁금해서 하나둘 찾아 읽고 있어요. 실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참고가 될 만한 유용한 팁도 독서모임 책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물론 독서에세이와 마찬가지로 장바구니를 묵직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종류의 책이기도 하죠.
서점이나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는 한 번 더 눈이 갑니다. 주인공이 자꾸 나 같고,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 달까요? 네 맘이 내 맘, 하는 마음이 돼버려서 어렵지 않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게 됩니다. 책을 통해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에 그리던 책방을 여는 서점원이 되기도 하고, 매일 매일 같은 시간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다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서점에서 한 권 남은 책을 동시에 집어 들다 소식이 끊겼던 유년 시절 친구와 재회하는 우정 드라마의 당사자가 되기도 합니다. 한두 번 들락거린 것도 아니고, 도서관과 서점이 가지는 분위기를 잘 알고 있잖아요. 느낌 아니까, 덕분에 생생하게 상상하며 읽게 되니 어찌 꿀잼이 아닐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몰입해서 읽고 나면 다음번에 근처 도서관이나 동네 서점에 가서 꼭 한 번 쓰윽,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물론 실제의 도서관과 서점은 대단히 조용한 곳이죠. 낯선 사람과 어떤 접점이란 게 생기기 쉽지 않고, 사건 또한 발생하기 어려운 정적인 공간입니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되어버린 달까요?
이외에도 분야를 막론하고, 책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책을 만나면 방앗간을 지나가는 참새 의 마음이 되어 기웃거리게 됩니다. 출판사 대표님이나 편집자 분이 저자인 책도 기웃기웃, 독서와 관련된 인문서도 기웃기웃, 책의 역사에 대한 책도 기웃기웃, 아주 성실하게 기웃기웃.
도무지 그냥 지나칠 재간이 저에겐 없습니다. 홀린 듯 펼쳐봅니다. 인터넷 서칭 중에 알게 되었다면 목차 탐색은 물론 미리보기로 본문이라도 좀 읽어야 성에 찹니다. 일단 마음이 반쯤 열린 상태라 구매로 연결되기도 아주 쉽지요.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에 저는 ‘책에 대한 책’은 적어도 ‘(대박은 못 치겠지만) 중박은 간다’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근거는 바로 ‘저’였습니다. 대단히 성급한 일반화인지도 모르겠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보편성에 무게를 뒀달까요? 자, 확인해보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셨다면 필시 책을 좋아하시는 분일 텐데요.
묻겠습니다.
‘책에 대한 책’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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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럴 줄 알았어! :)
아참, 그날 남편과의 게임방송을 보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대화 이후 자유롭게 보도록 허락(!)해주었는데 요즘은 현생이 바빠서인지 더 이상 보지 않네요. 저는 여전히, 대단히도 꾸준하게 ‘책에 대한 책’을 사 모으고 있는데 말이지요. 묘하게 기분이 좋아요. 싸운 적은 없는데 이긴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