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제 지인 중에 제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분은 없을 거예요. '내가 책에서 봤는데 말이야~’ 또는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있지~’ 로 시작되는 대화를 심심치 않게 해왔음을 인정합니다. 좋아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할 때마다 이제 막 사귄 연인을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눈을 반짝였음을 고백합니다. 평소 그래왔으니 어쩌면 당연합니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건.
그런데 말이죠. 왜일까요. 저는 저 질문 앞에서 항상 작아지고 맙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것처럼 내가 읽었고, 읽고 싶었던 책들의 제목이 머릿속에서 송두리째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자, 가만있어 보자’ 하고 신이 나서 달려들어야 맞거늘,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책 추천은 소개팅 주선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아무나 추천하지 않잖아요. 이 사람의 이런 점과 저 사람의 저런 점을 고려할 때 “그래,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는 확신이 들어야 가능한 일이죠.
‘둘이 취향은 비슷한데, 나이 차이가 너무 크지 않나?’, ‘외모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성격이 너무 상극이야.’, ‘말이 잘 통할 거 같긴 하지만 키가 큰 남자가 좋다고 했었지, 그럼 안 되겠다’ 하고 고르고 골라, 따지고 따져 두 사람의 연락처를 교환시킵니다. 서로에 대한 칭찬도 아낌없이 하죠.
그렇게 주선했음에도 불구하고 100% 성공하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나에게 이런 사람을 소개할 수 있어?’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슬금슬금 저와 거리를 둘만큼 성의 없는 주선은 없었다고 자신합니다.
책을 추천할 때도 같은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추천을 부탁한 사람에게 ‘인생 책’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은 아니에요. 적어도 ‘왜 나에게 이 책을 추천했지?’ 하고 의구심은 들지 않을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죠. 세상에 ‘누가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게 있을까요? 나에게는 너무너무 좋은 친구가 다른 사람에겐 ‘두 번은 안 보고 싶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책 또한 그렇습니다. 심지어 같은 책도 나의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달리 읽히거늘 내게 좋았던 책이라고 해서 상대에게도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이라 흥미로웠는데, 평소 독서량이 많지는 않은 친구라 너무 어렵다고 느끼면 어쩌지? 최소 70페이지는 견뎌야 진면목을 드러내는 책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조금 더 생각할거리가 있는 책이 나으려나?’
‘읽고 나서 깨달음이 많긴 했지만 친구의 종교관과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 불편할 수도 있겠지?’
책과 친구를 둘 다 고려하여 ‘최고의 책’까지는 아니지만 ‘꽤 괜찮은 주선’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재미있는 책들,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복기해봅니다. 나에겐 분명 좋았던 책인데, 그 책이 과연 저 친구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을지 싶어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 기대게 될 때도 많아요. 일종의 안전장치입니다. 베스트셀러라고 무조건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스테디셀러라고 누구에게나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았던 책이니까 ‘이게 뭐야!’ 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나도 좋게 읽었는데 마침 베스트셀러인 책’ ‘내 인생의 책이기도 한데 공교롭게 스테디셀러이기도 한 책’ 중에서 골라 추천하고 나면 조금 더 안심됩니다.
그렇게 고심 끝에 추천을 하고 나면 친구의 후기가 궁금해집니다. 재미있었는지, 재미있었다면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마치 소개팅 후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 버립니다. 먼저 연락하면 빨리 읽으라고 채근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싶어 따로 연락은 하지 않지만, 다른 일로 만났을 때나 연락했을 때 ‘사실은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있었는데 마침 생각이 나니까 물어본다’는 투의 무심하고 쿨한 말투로 묻곤 합니다.
“아, 맞다. 그때 내가 추천해준 책은 어땠어?”
아직 안 읽었다는 답이나 읽는 중이라는 답을 들을 때도 많지만, 친구의 대답이 “그 책 너무 좋았어. 진짜 재미있더라!” 일 때의 밀려오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함,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럴 경우 높은 확률로 친구가 되묻습니다.
“다른 책 또 추천해줄 수 있어?”
다시 책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처럼 머리가 하얘지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맨땅에 헤딩은 아니잖아요. ‘음, 그 책이 재미있었다면 이 책은 어떨까?’ 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어렵지만요.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아무리 유익한 책이더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요. 책을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책은 그 자체로 반쪽짜리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작가에 의해 창조되지만 책을 완성하는 건 결국 읽는 사람의 몫이죠. 책에 담긴 작가의 의도에 관계없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1권의 책을 100명이 읽는다면 서로 다른 100개의 감상이 존재할 거예요. 100권의 다른 책을 읽은 것과 진배없죠. 그 반쪽만 가지고 ‘추천’을 해야 하기에 책 추천은 참 어렵습니다.
“책 한 권 추천해줄 수 있어?”
받을 때마다 당혹스럽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결단코 그 질문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고, 얼마든지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질문이에요. 쉽게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일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해결하고 나서의 뿌듯함은 오히려 크죠.
그나저나 소개팅이 결혼까지 이어지면 보통 주선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잖아요.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책 추천은 뭐 그런 거 없나요? 책 추천도 되게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