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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Oct 02. 2024

꿀케미 필승 조합, 커피와 책

“아 맞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책 읽다가 엄마 생각이 났어.”


딸이 저녁 먹다 말고 이야기했어요. 순간 존박의 <네 생각>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더군요.

‘아침에 눈을 뜨면 네 생각이나, 창밖을 바라보다 네 생각이나’

이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요? ‘책을 읽다가 엄마 생각이 나’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요. 일종의 사랑 고백? 무심코 던진 그 말에 저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이어지는 뜻밖의 이야기.


“엄마 파블로프의 개라고 알아? 오늘 읽었던 책에 그게 나왔거든. 개에게 밥을 주기 전에 항상 종을 쳤대. 그랬더니 나중에는 종만 쳐도 침을 흘렸대.”


감미로운 노래가사를 떠올리던 저는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아니, 결국 침 흘리는 개를 보고 엄마를 떠올린 걸까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도 책 읽을 때마다 항상 커피 마시고 싶다고 하잖아. 커피 마시려고 책 읽는 건지 책 읽으려고 커피 마시는 건지 모르겠다며. 비슷한 거 아니야?”


아니라곤 못하겠더라고요.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기 전에 커피를 먼저 준비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나서야 ‘읽을 준비’가 끝난 느낌이 듭니다. 따끈해진 머그컵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 손에 온기를 더하고,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커피를 한두 모금 마시며 몸을 데웁니다. 그러고 나서 책을 펼쳐요. 따듯한 커피가 몸과 마음을 깨워서일까요? 텍스트에 집중도 잘 되고, 작가의 마음도 잘 느껴집니다.


“오늘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 잔 할까?”


가벼운 약속을 잡을 때 우리는 ‘커피’에게 기댑니다.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요. 어쩌면 독서에 있어서의 커피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이어주는 것’ 

‘손 내밀게 하는 것.’


커피는 책 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지만 과하게 등을 떠밀거나, 듣기 좋은 말로 꾀어내지 않아요. 그저 슬며시 가운데서 손을 잡아 떨어져 있던 책과 나를 연결해주고, 서로에게 스미도록 하죠. 입 안 가득 커피향을 채우며 커피와 책을 동시에 음미하다 어느 순간 책에 완전히 빠져듭니다. 


곁에 커피가 있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책을 읽다, 한 챕터가 끝나고 난 후 가만히 숨을 돌리다 그제야 생각이 나요.


‘아, 맞다! 커피!’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식어버린 커피가 아쉽진 않아요. 커피를 잊을 정도로 책에 몰입했던 시간이 되레 고맙습니다.


어쩌면 커피와 책은 상당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과 커피, 둘 다 인생을 사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곁에 있다면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합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매력을 모르지만 일단 알아버리면 끊을 수 없죠. 둘 다 중독성이 강해요.


몸과 마음이 고단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존재이기도 하죠. 머리가 멍하도록 피곤할 때 ‘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 하는 간절한 생각이 맴맴 돌아요. 그때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주는 위로는 경험해본 사람만의 것이죠.


마음이 극도로 지쳤을 때, 다시 힘내게 하는 건 내가 사랑했던 책의 한 구절이죠. 내 마음과 꼭 닮은 문장을 만났을 때의 희열은 그 어떤 다독임보다 힘이 셉니다.  


작가 헤밍웨이는 커피 사랑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이죠? 그의 작품마다 커피가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아마 헤밍웨이도 커피에 대해서만큼은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헤밍웨이에게 물어볼 길은 없지만 그 

또한 글을 쓰고, 읽는 그 순간 항상 곁에 커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산티아고가 큰 바다에 나가 청새치와의 전쟁을 치르고 상처투성이의 녹초가 되어 돌아 왔을 때, 소년 마놀린은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를 깡통에 담아 달려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마리아는 로버트 조던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드릴게요”라고 속삭입니다. 커피에게 힘을 얻어본 사람만이, 커피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책하면 커피, 커피하면 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확신의 증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책과 커피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책 읽는 사람이 아무리 줄었다 해도 카페에 가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책과 커피가 함께 있는 북카페도 드물지 않고, 북카페가 아니더라도 카페에 책이 있는 건 낯선 풍경이 아니죠. 요즘은 도서관에 카페가 붙어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서점에서 커피를 파는 곳도 많죠.


그 이유를 영국 서섹스 대학교 신경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의 실험 결과를 통해 짐작해봅니다. 그가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실험을 한 결과 조용한 곳에서 6분 정도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가 68% 줄고 심박수는 낮아지고,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그 다음으로는 음악감상이 61%, 커피 마시기 54%의 스트레스 경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요. 책이 있는 곳에 커피가 있었던 까닭을 알 것 같고, 고개가 끄덕여지시지 않나요?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면 그 시너지가 엄청나겠죠. 한 번 맛보고 나면 끊을 수 없고, 자꾸 생각나고, 경험할 때마다 좋을 수밖에 없는 꿀 케미  필승 조합, 커피와 책!



파블로프의 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커피를 마실 때마다 책을 읽고, 책을 읽을 때마다 커피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떠올렸다는 딸의 볼을 사랑스럽게 꼬집으며 저는 이야기했어요.


“으이그 그러네, 엄마 파블로프의 개 맞네. 엄마 꿈이 책 읽는 할머니인데 아무래도 수정해야겠다. 커피 마시며 책 읽는 할머니로.”


평소보다 살짝 세게 꼬집었음을 고백합니다(소근소근). 아무리 그래도 침 흘리는 개에 대해 읽으며 엄마를 떠올리다뇨.(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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