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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Oct 21. 2024

직렬이냐 병렬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 생에 있어 가장 먼저 만나는 심각한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어보는 어른의 입장에서는 반쯤은 장난이지만 받아들이는 아이 입장에서는 궁서체죠. 엄마라고 대답하자니 아빠에게 미안해지고, 아빠라고 대답하자니 엄마의 실망한 표정이 상상되어 난감합니다. 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뇌하다 결국 절충안을 택합니다.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자신의 마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제법 현명한 그 답.

“둘 다 좋아.”

아이의 답에 그제야 엄마 아빠는 흡족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질문에는 “짜장이 좋아, 짬뽕이 좋아?”가 있죠. 짭조름 달착지근한 짜장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의 짬뽕 중 하나를 고르라니 곤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둘은 오랜 시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라이벌이죠. 두 명이 가서 반씩 나눠 먹으면 좋으련만, 혼자 먹는 경우나 같이 간 사람이 볶음밥 같은 제3의 메뉴를 골라버리면 세상 난감해지고 맙니다. 점원의 “주문하시겠어요?”와 함께 주어지는 약 5초간의 카운트다운. 아,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요. 다행이도 이 심각한 고민이 세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성을 띄는지라 시스템적으로 해결책이 나왔으니, 바로 짬짜면입니다. 어느 것도 아쉽지 않아지는 최선의 선택이라 하겠습니다.




독서가들에게도 이와 견주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병렬독서냐 직렬독서냐 그것이 문제로다’ 입니다.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갈 것이냐, 여러 권을 동시다발적으로 읽을 것이냐. 그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여 무엇도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직렬독서를 선택하자니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고, 읽는 속도와 사는 속도가 차이가 나 집에 펴보지도 않은 책들이 쌓여갑니다. 병렬독서를 하자니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도 많아지고, 독서 자체가 산만해지는 탓에 ‘읽었는데 안 읽었습니다’ 사태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죠.


“직렬독서가 좋을까요, 병렬독서가 좋을까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런 질문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책 커뮤니티에 이에 대한 고민을 혼자 해결하지 못한 채 숙련된 독서가분들의 고견을 구하는 질문이 가끔 올라오곤 하니까요.

하지만 뾰족한 정답이 있는 건 결코 아닌지라 대부분 이렇게 모호하게 답하곤 하죠.

“둘 다 상관없어요.”

“책마다 달라요.”

“자신에게 맞는 독서 스타일로 읽으면 됩니다.”

어떠한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이런 답은 저마다 맞는 답이긴 합니다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합니다.


저 또한 이 질문을 마음에 품은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얻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두 가지 중대한 고민에 대한 현명한 답을 통해 힌트를 얻었죠. 다시 말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둘 중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을 때는 절충안을 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 다 좋아” “짬짜면”처럼 완벽하게 흡족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러합니다.


일단 저는 한 주를 시작할 때 그 주의 ‘집중 읽기 책’을 정합니다. 그리고 매일 일정하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고정된 독서시간에는 정해진 ‘집중 읽기 책’을 읽습니다. 제 경우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30~40분 정도가 그 시간에 해당하는데, 그 시간만큼은 ‘집중 읽기 책’ 외에 다른 책을 읽지 않고 ‘집중 읽기 책’에 집중합니다. 읽기 기한이 정해져 있는 독서모임책이나,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하는 분야 책 등 끝까지 정독해서 읽어야 하는 책을 이 시간에 읽습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상당히 자유롭게 독서합니다. 틈틈이 나는 조각 시간을 이용해서 특별히 정해놓은 책이 아닌 눈에 보이는 책, 읽다 만 책을 읽습니다. 하루에 10권 이상의 책을 찔끔찔끔 읽기도 합니다. 한 꼭지만 읽을 때도 많고, 한 꼭지를 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책갈피를 껴놓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에요. 병렬독서로 읽는 책은 처음부터 읽지도 않을 때도 많고, 꼭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습니다. 그때 그때 재미를 위해, 필요를 위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읽습니다. 끝까지 다 읽는데 두어 달이 걸리는 책도 있어요.




하지만 절충안은 언제나 절충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상태와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의 ‘정답’이 있다면 그걸 택하면 그만입니다. 아이도 대부분의 경우 엄마 아빠 둘 다 좋지만 가끔은 엄마가 더 좋거나 아빠가 더 좋은 경우가 존재하고, 비오는 날이나 피곤한 날은 짬뽕이 더 당기고, 이삿날이나 졸업식에는 짜장면이 국룰인 것처럼 때때로 책마다 어울리는 독서법이 꼭 정해지는 책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복잡한 소설은 병렬독서로 너무 쪼개 읽으면 항상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며, 행간의 의미와 글의 여운이 읽는 즐거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나 감성 에세이는 하루에 조금씩 아껴가며 다른 책들과 함께 병렬독서로 즐기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독서 방법이란 게 뭐 그리 중한가요? 이것저것 시도하다보면 나에게 ‘더 좋은 것’ ‘더 잘 맞는 것’이 생길 수 있고, 바뀔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저처럼 절충안을 선택해도 그만이죠. 책 읽는 게 나라를 구하는 문제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짜장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병렬독서파인가요, 직렬독서파인가요? 나라는 구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몹시 궁금하긴 합니다만.(*)


 

사진: UnsplashKelsy Gagne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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