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는게 지루한 당신을 위한 영화
세명의 인물들
황량한 미국 남부에서 살고 있는 퇴역군인 '르웰린'은 사슴 사냥을 하던 중, 사막 한가운데에서 멕시코 갱들이 총격전을 벌인 현장을 목격한다. 트럭은 총을 맞아서 구멍이 뚫려있고, 갱원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있었다. 사건의 흔적을 따라가던 르웰린은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액의 현금이 들어있는 가방을 발견한다. 위험한 돈임을 예감한 르웰린은 돈가방을 들고 집에서 먼 곳으로 도망가고, 아내도 친정으로 대피시킨다.
그러나 돈을 노리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극악무도한 싸이코 살인마, '안톤 쉬거'. 그는 돈가방을 가지고 있는 르웰린의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그러면서 안톤은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인다. 그와 말을 섞었다면 거의 다 죽는다. 딱히 방해가 되어서도 아니다. 이유 따윈 없었다.
늙은 보안관 '에드'는 또 다른 희생자를 막고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르웰린과 안톤의 뒤를 쫓지만, 매번 한 발 늦기만 한다. 에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다.
최악의, 최고의 악당 안톤 쉬거
안톤 쉬거는 조커, 다스 베이더 등과 함께 최악의 악당을 뽑는 설문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과연 그가 다른 악당들보다 더 대단한 이유가 뭘까?
안톤은 매우 위험하지만 막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보안관인 에드도 그를 잡지 못하는데, 안톤은 갑자기 슥 나타나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사라진다. 그 타이밍이 매번 굉장히 뜬금없기 때문에 관객은 언제 다시 안톤이 나타날지 몰라 항상 쫄아있을 수밖에 없다.
공포 영화는 소리를 끄고 보면 무서움이 확 줄어든다.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음악은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엄청난 사실. 이 영화엔 배경음악이 단 1초도 쓰이지 않았다. 음악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렇게 살 떨리는 긴장감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안톤이라는 캐릭터의 포스가 그만큼 강렬했기에 가능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는 이유
영화의 제목만 보았을 땐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노인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돈가방을 쫒는 싸이코 킬러의 이야기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 여기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영화를 있는 그대로 보자. 에드는 결국 안톤을 잡지 못했다.
그는 무능력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에드처럼 늙어버린 사람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느끼는 허망함, 좌절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이번엔 영화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아보자.
영화에서 안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어야 했다. 안톤을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럴 필요 없잖아요."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안톤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불행이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골라가면서 찾아오던가? 모든 건 우연이었다.
불행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에게 견뎌낼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한 번 다가온 불행은 정당한 값을 치르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는다.
안톤 쉬거는 갑자기 나타나서 불행을 강요하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절대자, 신, 우연, 필연, 운명 등 영화에서 안톤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노인은 운명 앞에서 무기력한 우리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건 '운명을 피할 방법은 없다' 또는 '운명 앞에 놓인 우리를 위한 구원은 없다', 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적처럼 보이는 안톤조차, 상처를 입고 다친다. 그는 마치 운명의 대리인처럼 행동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운명의 지배를 받는 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안톤이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충격 최대 보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몰입감 쩌는 스릴러다. 자극적인 영화가 보고 싶지만 3류 공포영화는 질린 당신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이미지출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