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당신을 위한 영화
살아남은 아이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5년이었다. 14살인 '세이타'는 4살짜리 동생 '세츠코',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살던 집은 미군의 공습을 맞아서 불타 없어졌고, 공습을 피해 도망치던 과정에서 어머니와 헤어지고 만다.
폭격이 지나간 후, 세이타는 어머니가 근처 피난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지만 어머니는 이미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다음 날 돌아가시고 만다. 해군 함장이신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전쟁에 참전한 후 연락이 되지 않고, 다른 친척들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세이타와 세츠코는 먼 친척 아주머니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그러나 먹을게 귀한 전쟁통에 음식을 축내는 두 아이들이 반가울 리 없다. 아주머니는 세이타의 어머니가 남긴 유품을 팔아 쌀을 사 오면서도 세이타에겐 나라를 위해 나가서 일하지 않으니 쌀밥을 줄 수 없다며 구박을 준다. 아주머니의 등쌀에 못 이긴 세이타는 세츠코를 데리고 아주머니의 집에서 나와 동굴에 자리를 잡는다.
처음엔 자유를 얻은 거 같아 좋았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과도 같은 생활은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어린 세츠코를 두고 일을 하러 갈 수도 없었던 세이타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서리를 하다가 밭주인 아저씨에게 딱 걸린다. 그런데 동굴에서 거지꼴을 하며 살고 있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도 아저씨는 음식을 나누어주기는 커녕, 세이타를 두들겨 패고 경찰서로 끌고 간다. 오랫동안 굶은 탓에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의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만다. 어린 남매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딧불이의 묘]는 우익 영화?
[반딧불이의 묘]는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전범국가인 일본이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영화라는 주장 때문이다.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고통받던 때에 한국은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는 중이었다. 한국의 아이들은 더한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본에게 쌓인 것도, 받을 것도 많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 "다른 나라들 침략할 땐 언제고, 사실 자기들도 쉽지만은 않았다 이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시선에만 갇혀 영화를 보는 습관은 좋은 영화 감상법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 성차별 프레임을 씌우는 "그분들"만 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녀평등은 물론 옳은 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국을 침략한 일본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의도가 일본의 피해를 감정에 호소하기 위함이 아님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전쟁의 아픔"이라는 정서를 공유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님을 알 수 있다. 남매가 비참해진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의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른들이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조금이라도 가엾게 봐주어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위기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이 뭉쳤다면, 그랬다면 정말 나쁜 건 전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매는 버림받았다. 가장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한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반딧불이는 죄가 없다
동굴에 온 첫날밤, 세이타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세츠코를 위해 반딧불이를 잔뜩 잡아와서 동굴 안에 풀어놓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반딧불이들이 전부 죽어있었다. 세츠코는 죽은 반딧불이들을 모아서 한 구덩이에 묻어주는데, 그 광경을 본 세이타는 어머니가 다른 시체들과 함께 묻혔던 모습을 떠올리고 눈물을 흘린다.
반딧불이는 스스로 빛을 내며, 여럿이 모이면 장관을 연출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위치에서 빛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멋진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은 세이타에게 잡힌 반딧불이들처럼 착취당하고 또 살아남지 못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
[반딧불이의 묘]는 외면당한 자들의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