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네이먼'은 셰이퍼 음악학교의 신입생이다. 전설적인 드러머가 되는 것이 꿈인 그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학교에서 가혹하기로 악명 높은 '플레처 교수'였다. 그는 새로운 드러머를 구하는 중이라며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앤드류에게 연주를 시켜보았다가, 갑자기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앤드류의 첫 연습날이었다. 그는 메인 드러머의 옆에 앉아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있었다. 합주를 하던 중, 플레처는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그가 손을 드는 순간, 공기가 싸해졌다. 악기 중 하나가 음정이 맞지 않았던 것. 플래쳐는 악기들의 소리를 확인하더니, 트롬본을 연주한 한 학생을 잡아서 조졌다. 그냥 혼내는 것이 아니었다. 통통했던 학생에게 "니 머릿속엔 음악은 없고 맥도날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등 고함을 지르고 모멸감을 주는 심한 말을 하여 멘탈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원래 무서운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앤드류는 적잖이 놀란다.
곧바로 이어지는 쉬는 시간에, 플레쳐가 앤드류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할까 무서웠지만 플레처는 너도 꿈이 있어서 여기에 왔을 테니 잘해보자며 앤드류를 자상하게 다독여주었다. 응? 이 사람, 그래도 뼛속까지 나쁘진 않구나 생각했다.
다시 이어진 수업. 이번엔 앤드류가 드럼을 쳤다. 그런데 플레처가 박자가 살짝 맞지 않다며 연주를 멈췄다.
"Not quite my tempo" (내가 원하는 박자랑 좀 달라)
몇 번을 다시 시도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플레쳐의 표정은 어두워져 갔다. 차분히 다시 해보자던 플레처는 결국 폭발하여 앤드류에게도 윽박을 질렀다.
이유 있는 갈굼
플레처의 카리스마는 상당하다. 그의 찰진 욕을 듣고 있노라면 얼른 달려가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다.
앤드류를 조지는 플레쳐 (ㅎㄷㄷ)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심한 그의 폭언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플래처는 천재는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찰리 파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제목은 [버드]
영화에서 계속 인용되는 '찰리 파커'는 3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마약 때문에 죽고 말았지만 모던 재즈의 기반을 만든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이다.
그런데 찰리 파커가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건 찰리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조 존스'라는 드러머가 심벌즈를 집어던진 덕이었다. 충격을 받은 찰리는 처음으로 지금껏 해온 것이 제대로 된 연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친 듯이 연습하여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즉, 타협하지 않는 자세와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노력이 그를 있게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해로운 말이 "Good job"(그만하면 잘했어)이야."
플레쳐는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기 위해 그토록 학생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앤드류도 플레쳐에게 욕을 먹는 것이 싫은 만큼 미친 듯이 연습에 매달렸다. 스틱을 쥔 손이 다 까져서 드럼이 피범벅이 되도록 말이다. 찰리 파커처럼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되겠다는 야망도 점점 더 커져갔다. 하지만 한치의 양보도 없는 플레처는 앤드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두 사람의 대결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진정한 예술?
이 영화는 "진정한 예술은 어떻게 탄생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설적인 음악인들; 비틀즈, 지미 핸드릭스, 커트 코베인, 프레디 머큐리 등은 예술에 자신을 모두 바쳤다. 그렇게 그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비극적인 삶으로 치렀다. 음악을 하는 모두가 그들처럼 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 '적당히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예술인이 아닌 걸까? 적당히 해도 괜찮다면, 앤드류와 플레처가 추구하는 예술이란 어떤 것일까?
자신을 채찍질하며 한계로 몰아가는 앤드류를 보며 우리는 경외감을 느낀다. 나라면 꿈을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일에 열정을 바쳐 몰두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