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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Apr 19. 2019

백전노장의 철학이 담긴 영화
[그랜 토리노]

#12 꼰대가 되는 것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누구인가?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이 영화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더라도 [황야의 무법자]라는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1964)는 권선징악과 미국의 개척정신을 강조했던 기존 서부극의 틀을 깨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무법자, 안티히어로를 내세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3편의 무법자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얻었다. 맥크리를 포함한 수많은 카우보이 캐릭터의 원조가 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양의 무법자] 포스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제작자와 감독으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지난주에 언급했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다룬 [버드], [용서받지 못한 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과 [아메리칸 스나이퍼]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굵직한 명작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그랜 토리노]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마치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만남

 '월트 코왈스키'는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백인, 노인, 보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한국 전쟁 참전용사, 순정남, 자식과 어색한 아버지. 그는 얼마 전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부턴 집에 틀어박혀서 맥주를 마시거나 잔디를 다듬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옆집엔 그와는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 중국계 소수 민족인 '몽족'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인 '타오'는 아주 내성적인 아이다. 그런 타오에겐 성가신 사촌이 있었으니, 갱원들과 몰려다니며 매일 시비와 싸움을 일삼는 못된 사람이었다. 그는 타오에게 남자답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같이 어울리자고 타오를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신고식으로 옆집에 사는 월트가 가장 아끼는 애마, '그랜 토리노'를 훔쳐오라고 강요했다. 자다가 차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월트는 차를 훔치려던 타오와 마주치고, 타오는 후다닥 도망쳐 나온다.


포드사의 그랜 토리노 [1972]


 다음 날 밤, 타오의 사촌은 갱원들을 데리고 와서 타오의 집 마당에서 소란을 피운다. 타오 가족 전체가 싸움에 말려들자, 월트는 소란을 해결하기 위해 총을 가져와 들이대며 갱원들을 쫓아낸다.

내 마당에서 깝치지 마

 그 일 이후 타오네 가족들은 월트에게 크나큰 호감을 가지게 된다. 월트는 처음엔 그런 관심이 떨떠름했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로운 그에게 활력이 되었다. 타오는 차를 훔치려 한 잘못을 책임지기 위해 월트가 시키는 대로 잡일을 하기로 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월트는 타오가 순수하지만 어리숙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에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평화는 계속되지 않았다. 갱원들은 여전히 타오를 가만두지 않았고, 급기야 타오의 가족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진심으로 분노한 월트는 타오를 위해 갱들을 족치기로 마음먹는다.

 

클린트 = 월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월트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대표 캐릭터인 카우보이로 유명세를 얻은 후 미국의 대표 산업인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가장 '미국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월트에게 한국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긴 끔찍한 곳이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미국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포드에서 평생 일했다. 그들에게 미국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도, 보수 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말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초반에서 동양인과 흑인은 낯선 존재로 묘사 된다. 월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미국밖에 모르는 꼰대가 되어버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진정한 어른의 자세

 그러나 월트가 세대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타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 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그랜 토리노]에는 자신의 좁은 생각과 시야를 인정하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하고 싶다는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타오에게 자신의 공구를 선물해주는 월트

 저물어가는 세대로서 후세를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월트는 타오에게 스스로 일하고 책임지는 자세, 강단 있게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는 남자의 삶을 가르쳐주었다. 물론 타오가 그대로 따라하기엔 과격한 방식이긴 했지만, 그는 타오가 자신이 겪었던 고통,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랬다.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앞선 세대의 책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타오에게 물려준 그랜 토리노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치'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그가 타오를 위해 갱원들과 싸울 때 선택한 방식은 '진정한 어른(성인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뒷짐을 지고 지적만 하는 꼰대가 아닌 후세를 위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삶의 모범으로 삼을만 하다.


이미지 출처: 영화 [그랜 토리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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