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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Mar 12. 2019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답답함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4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당신을 위한 영화

누굴 위한 복지인가?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을 목수로 살았지만 앓고 있던 심장병이 악화되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고정수입이 없으니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구직 수당 또는 질병 수당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주치의는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고용지원센터에선 다니엘의 건강이 괜찮으니 수당을 주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황당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상담원 대기 시간만 1시간 50분. 겨우 연락이 닿아서 재심사를 요구했지만, 그러려면 심사관의 전화를 받고, 양식을 쓰고, 어쩌고저쩌고...

 답답해서 직접 고용지원센터에 찾아갔더니 양식은 모두 온라인으로 작성한다고 했다. 컴퓨터를 써 본 적이 없는 다니엘은 직원에게 도와 달라 말했지만 도움말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해 잠시 진정하려는데, 다른 곳에서 언쟁이 벌어졌다.

 케이티는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리를 잘 몰라 약속 시간보다 몇 분 늦었는데, 블랙리스트에 올라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겨우 몇 분 때문에 블랙리스트라니? 케이티에겐 생계가 걸린 일인데 말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공무원들은 "원칙"을 들먹이며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온 건 잘못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다니엘은 참다못해 극대노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니엘과 케이티네 가족은 이 사건을 계기로 친해진다. 같은 처지에 놓인 그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가족과도 같은 각별한 사이가 된다.

다니엘과 케이티네 가족. 이대로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다니엘은 질병 수당 항고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구직 수당을 신청했다. 수당을 받으려면 구직 중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이력서를 써서 온 동네에 돌리고 왔더니 돌아온 건 4주 수당 지급 중지. 제대로 된 이력서도 아니고 활동을 한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구직 사이트를 쓸 줄도 모르고, 당장 내일 생활비가 없는 사람을 위해 국가가 하는 일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것뿐이라니.

 다니엘에게 복지제도는 희망고문이다. 힘없는 개인은 집단이 휘두르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참다못한 다니엘은 고용지원센터 건물에 락카로 이렇게 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재심사 날짜를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엿 같은 통화 연결음도 바꿔라."


낯설지 않은 이 답답함

 현실과 동떨어진 일처리 방식을 흔히 '탁상행정'이라 부른다. 당사자의 말은 듣지 않고, 개인은 무조건 집단이 정해놓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관료주의의 폐해다.

어째 남일 같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사람이 먼저다

 한 사람의 가치는 쉽게 몇 개의 숫자로, 한 장의 서류로 정리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약자의 편에 서서 그러한 현실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서류가 다 담아내지 못한 이면의 진짜 삶, 진짜 고통 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부조리하고 차갑다.


이미지 출처: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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