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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Mar 13. 2019

영화와 삶의 공통점
[버닝]

#7 영화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당신을 위한 영화

세 명의 주인공

 종수'는 소설가가 꿈인 청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알바를 전전하고 있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집을 떠나버렸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라 사고만 치고 다니신다. 그래서인지 종수의 눈빛은 항상 공허하다.

 '해미'는 어릴 때 종수와 친구였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히 종수와 마주친다. 해미는 종수와 시간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종수는 그런 해미에게 빠진다.

 얼마 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벤'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와 친해지게 된다. 직업도, 정체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남자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자주 만나게 된다. 벤은 해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해미는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종수가 보기에 벤은 수상한 점이 너무 많다. 종수는 이유 없이 본인과 해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벤을 의심한다. 그래서 몰래 벤의 뒤를 밟기도 하고, 해미가 있는 곳이면 따라가서 둘만 있는 자리를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벤의 정체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어느 날 벤은 종수에게 본인의 취미가 폐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라고 은밀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에 태울 비닐하우스는 종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혹시 해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닐까, 종수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종수는 집 근처의 밭을 뒤져 모든 비닐하우스를 돌아보았지만, 불탄 곳은 없었다. 벤이 말한 비닐하우스는 정말로 끔찍한 범죄를 암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감은 벤으로부터 해미를 구해야 한다는 광적인 집착으로 변한다.

왼쪽부터 종수 (유아인), 해미 (전종서), 그리고 벤 (스티븐 연)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엥? 이렇게 끝나? 뭐야 이게?'

 지극히 정상이다. 이 영화는 오락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곳곳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거나, 또는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해석을 제시하겠다. 

[버닝]의 주제는 청년들의 상실감이다. 

 종수는 가진 것도, 잘하는 것도 없다. 해미는 카드빚이 쌓이고 가족과도 멀어진 현실을 잊고 싶어서 삶의 진짜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 절망하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한다. 반면에 벤은 모든 것을 가진 금수저, 세상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그가 해미의 마음마저 쉽게 다루는 것을 보고, 종수의 열등감은 폭발한다. 하지만 종수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태생부터 다른 벤을 이길 방법이 없다. 과연 그는 어떻게 이 상실감을 극복할 것인가?

 여기까지가 [버닝]의 표면적 주제이다.


또 하나의 주제: 영화의 본질

 감독은 청년의 상실감이라는 주제를, 영화의 본질이라는 더 깊은 주제와 엮어서 말한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면, 극 중에서 해미는 귤을 먹는 연기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 중요한 건 귤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사실을 잊는 거야."

이 대사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해미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본질을 설명하기도 한다. 영화를 볼 때 우리가 몰입을 하게 되는 이유는 화면 속 세상이 진짜임을 믿어서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일 뿐임을 잊기 때문이다.

 영화 속엔 이런 식의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메타포, 제물, 부시맨의 춤, 트럭과 포르쉐 등).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의미 없는 함정이다. 하하하.


감독: 이창동 - 박하사탕 (2000), 밀양 (2007)

 [버닝]은 진실을 알 수 없는 비유들과 애매한 결말을 선택하면서 결국 청년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대신,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은 관객에게 맡겼다.

 그것이 이창동 감독의 스타일이다. 질문을 할 뿐, 본인이 생각한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관객은 결국 본인의 욕망을 따라가며 답을 찾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우리는 생각할 거리를 얻는다. 결말의 의미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열등감, 답답함의 정체는? 그가 질문을 이야기 속에 녹이는 방식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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