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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은소나무 May 09. 2020

내가 캠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

시작은 그를 위한 배려였지만 지금의 도전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다!


 

 2017년 3월. 애써 기억을 지우려고 한 탓일까? 날이 더웠는지 추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그저 우울한 꿈만 꿨던 기억이 난다. 결혼 시작부터 지병으로 힘들어 하셨던 어머님께서 오랜 투병 끝에 머나먼 곳으로 떠나셨던 그 날의 기억.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받아들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세기말이라 불렸던 1999년 뜨거운 여름에 만나 2000년 여름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의 풋풋한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게 나빴던 건 그런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가물거리고 예뻤던 건 추억으로 간직하더라는 거- 덕분에 둘 다 마흔을 훌쩍 넘겼음에도 남편의 그 풋풋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나의 옆지기가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인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너무나 아파하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고인이 된 분께 효도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실컷 울어. 내가 다 받아줄게” 하는 것 역시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그 때 떠오른 한 가지는 바로 ‘캠핑’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니 이런 상황에서 캠핑을 떠올리다니!!’ 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할 테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꼭 들어주고픈 마음에 나도 모르게 캠핑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6년의 연애 그리고 10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은 항상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캠핑 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곤 했다. 누가 들으면 마치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캠퍼일거라 착각할 정도로 너스레를 떨었던 남편- 항상 학창시절 때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하나씩 일구어가는 맛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지만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어 그래~” 하고 무심하게 넘겨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정말정말 쉬고 싶었으니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내게 있어 여행은 무조건 ‘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네모반듯하게 갖추어 놓은 안락한 공간에서 마음껏 구경하고 마음껏 쉴 수 있는 그런 여행- 내 손으로 밥을 안 해도 되고 청소도 안 해도 되고 일도 안 해도 되는 여행 얼마나 꿀 같은 휴식인가! 그런데 캠핑을 하자고?!! 텐트도 쳐야 하고 삼시세끼 뭘 차려야 하나 걱정도 해야 하고 잠자리도 불편한 그런 걸 나보고 같이 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나에게 캠핑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에게는 큰 휴식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장례를 치르고 딱 한 달이 되던 어느 휴일에 남편에게 텐트를 사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캠핑- 결심하는 게 참 힘들었지 막상 결심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텐트 사러 가자고 제안했던 바로 그 날 하늘에선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고 그 비를 뚫고 텐트를 사고 기본적인 캠핑용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딱 일주일 후에 생애 첫 캠핑을 가게 되었다. 나의 예상대로 텐트를 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고 왕 초보 캠퍼이기에 장비 역시 너무나 허술해서 이건 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그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이내 나의 결심이 참 잘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나의 생애 첫 캠핑이 시작되었다.    

 우린 늘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생활을 유지해 왔다. 그나마 휴일에는 거실에 둘러 앉아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좁은 텐트 안에서 하루, 이틀을 함께 지내다 보니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삶과 행복에 대해서도 좀더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더운 여름 집에 있으면 에어컨 바람 쐬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텐데 기어코 땀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치고 용품들을 정리하고 휴대용 선풍기 앞에 넷이 쪼로록 붙어 앉아 땀을 식히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우린 또 다 함께 무언가를 해냈어!!’ 하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나 혼자 밥을 차렸지만 캠핑장에서는 두 아들까지 합세해서 뭐든 하나씩 도왔고 밤이 되면 모두 함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기도 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아이들도 점차 핸드폰보다는 좁디좁은 텐트 안에서 엄마, 아빠와 보드게임 하기를 원했고 그 속에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캠핑은 나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회를 거듭할 때마다 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우리 가족의 캠핑이야기를 글로 끄집어내는 것! 캠핑- 시작은 남편에 대한 배려였지만 지금의 도전은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함이라는 걸~ 캠핑을 처음 시작할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처럼 지금의 도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도 그랬던 것처럼 내게 더 커다란 선물을 가져다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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