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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멘탈 심리학자 Feb 28. 2023

아주 평범한 내가 명품을 사는 이유

스몰 럭셔리의 힘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소비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떴다. 온 커뮤니티가 들썩거리며 명품족들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졌다. ‘남들 있다고 다 따라 사다니. 역시 비교, 경쟁, 남의 시선에 죽고 못 사는 민족답다’ ‘형편도 안되면서 주제를 모르고 무슨 명품이야’ ‘명품이 얼마나 유행이 심한데 오래 사용한다고 명품 산다고? 이런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거 하나 사려고 벌벌 벌벌 손 떨면서 샀을 걸 생각하니 궁상맞다’ ‘명품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려고 하다니.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내세울 것이 없나?’ ’명품 그게 뭐라고 그 비싼 돈을 거기다 들이나? 나는 명품 하나 없어도 잘만 산다.‘ ’명품 살 돈과 에너지로 자신이 브랜드가 될 노력을 해라‘ 등등 명품족을 향한 합리적인 비판도 많이 있다.


그런데 명품 사는 사람들은 단일 집단이 아닌데 저런 비판은 누구를 향해있는 것일까? 명품 사는 사람들 중에서 돈이 아주 많아 보통 사람들이 생필품 사듯 명품을 사는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다. 반대로 월급을 모두 명품 소비에 쏟아붓거나 빚지면서까지 명품에 중독된 사람들 역시 소수일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곳에 소비할 돈을 아껴 자신의 예산 내에서 가끔씩 명품을 소비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나 같은 경우 명품을 삼십 대에 처음 가졌다. 결혼할 때도 남들 다 주고받는다는 것을 생략하고 커플링 하나씩만 나눠 끼고 결혼했다. 그 당시 둘 다 학업을 마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형편에 맞춘 결정이었다. 겉으론 물론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도 결혼하면서 장만한다는 좋은 것, 예쁜 것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결혼한지 몇 년 되었을 때 학회 차 유럽에 같이 갔다가 아웃렛 매장에 들렸고 난생처음 명품 가방을 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우스워 보일지 모르는 중저가 명품이겠지만 나는 처음 가져보는 것이라 뛸 듯이 기뻤다. 그때 당시 좋은 물건에 대한 안목도 없었고 내가 필요로 하는 가방의 쓰임새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 것이라 지금은 잘 들지 못한다. 비록 집 한켠에 자리 잡고 있지만 볼 때마다 사진처럼 그때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살 때 느꼈던 기쁨 말고도 내가 가졌던 삶에 대한 희망도 같이 떠오른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브랜드의 가방을 사고 뛸 듯이 기뻐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앞으로도 너무 비싼 명품은 못 사주겠지만 이 정도는 살면서 기념일에 꾸준히 사주려고 노력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념하는 날 또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약속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나에게 명품은 물건 그 자체를 넘어선 남편과의 행복한 추억이다.


또 다른 명품과 관련된 일화도 떠오른다. 노랭이 남편을 만나 한평생 절약하며 열심히 살아온 주부가 고된 항암치료를 마치고 남편에게 고가의 명품가방을 선물 받고 감동해 오열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 인생의 동반자가 주는 선물은 물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 같다. 물론 그 남편도 자신이 살아온 대로 가성비를 따져서 축하선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물품, 현금 또는 부동산으로 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의미와 감정이 약간은 다를 것 같다. 그 주부가 한평생 누려보지 못했던 사치를 선물함으로써 지난 세월에 대한 위로와 함께 앞으로 있을 고된 여정도 잘 이겨내자는 응원의 의미가 되었을 것 같다.




이렇듯 상품과 사람의 감정이 결합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본 기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에메랄드 빛 박스로 유명한 명품 주얼리 브랜드에서 실험을 했는데 그 박스의 색을 피험자에게 보여주자 여자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브랜드가 마케팅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브랜드보다 품질이 더 좋으면서 가격은 더 합리적인 제품이라고 왜 없을까? 그런데 그 브랜드가 여자들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 것은 그 주얼리와 함께 로망과 환상을 같이 팔아 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그 브랜드가 오랜 기간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이 가성비를 따진 합리적인 소비일 것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절약과 가성비 소비로 가득 찰 것이다. 하지만 평생 늘 아득바득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예산 안에서 절약하며 누리는 스몰 럭셔리가 보잘것없는 일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면 그게 그렇게 남한테 손가락질받을 나쁜 일인가 싶다. 마치 회색 빛 가득한 세상에 가끔 보이는 유채색이 있다면 그것 또한 살아가는 재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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