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그 눈을 떠
'그 눈을 떠'
뮤지컬 웃는남자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노래이자, 지금까지도 계속 맴도는 노래이다.
신분차별이 심했던 유럽에서 귀족에게 주인공이 자비를 호소하는 노래이다.
웃는남자는 데아와 그윈플렌의 사랑보다도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뮤지컬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한의사로서 연구와 임상을 하면서, 그리고 의대를 준비하면서 더욱 깊이 고민한 주제이다.
실제 환자를 보기 전까지는 막연히 '배운 만큼 봉사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생각했다.
'봉사', '베푼다'는 말에는 계급의식이 내포된 것 아닐까
계급의식은 부정적인 것인가
계급의식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상류층의 부도덕이 문제가 되는 것뿐인가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치료의 기회가 더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 평등인가
돈을 받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걸까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을 실제 환자들을 보면서야 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머리에서 심장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뿌리는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이 나의 노력만이 아니라 운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다.
노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오만이다.
전쟁 없이 평화롭게 공부할 수 있는 사회, 학용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학교와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시간적 지리적 경제적 기반,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 등등
모든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노력이 담겨있다.
'다행히' 주변 환경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
주변 환경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므로 지금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언젠가는 완벽해질수도, 완벽했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것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근본이 아닐까.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일구어 왔다는 것은 부족한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는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될 수 없다.
난 이렇게 베풀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만족과 주변 시선을 느끼기 위한 것일 뿐.
'그 눈을 떠'에서도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다 그렇지 완벽할 순 없어요
사람이란 여러분조차도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지만 각자 충분한 고민을 해야한다.
내게도 아직도 많은 질문이 남았기에 고민이 필요하다.
'그 눈을 떠'의 가사처럼 거짓과 껍데기는 꿰뚫어볼 수 있길.
더 나아가 실천하는 아름다운 지성인이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