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한 순간
몇 년 만에 재수학원 친구를 만났다. 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서 같이 불안에 떨던 그때, 이미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예쁜 옷을 입고 MT를 가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술 한 잔씩 하는 다른 친구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10년 뒤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사회인이 되었다. 퇴근하고 저녁에 만나 작은 술잔에 찰랑찰랑 맑은술을 서로 따라 주고 홀짝였다. 안주는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 건강에 대한 걱정이었다. 물론 옛날이야기도.
수능 공부할 때는 수학만 안 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 넘어까지 하루 시간의 80%를 수학 공부에 쓰다 보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 대학생이 되자 수학은 필요 없었다. 수학하던 시간에 화장하고, 놀러 다니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었다. 그런데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없어졌다. 이젠 철마다 돌아오는 이 놈의 시험만 안 보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날씨가 좋으면 무얼 하나. 꽃 같은 20대에 벚꽃구경 한 번 못해보고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땡볕에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이나, 밖에서 5분만 걸어도 발끝에 감각이 없는 한겨울이 되어야 겨우 방학이었다. 그러다 졸업하고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니 한동안은 점수 걱정을 해야 하는 시험이 없었다. 6년 만에 벚꽃구경도 가보고 날씨 좋은 5월, 10월에 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시험을 안 보는 기쁨도 금방 사라졌다. 이젠 당직만 안 서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당직할 때 행여 못 들을까 요란하게 해 둔 응급실 벨 소리는 아직도 어디선가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귀에 있는 털이 서는 것 같다. 당직이 끝났을 때, 온잠을 잘 수 있단 것에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당직을 하지 않는데도, 난 친구와 술 한 잔 하며 그때의 행복이 아닌 또 다른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것만 없어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다 없어진 지금도 난 여전히 다른 조건이 좋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힘들어하던 그 일이 없어진 직후에는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는데. 돌아보니, 이것만 해주시면 행복할 거라고 있는 신 없는 신 찾아가며 기도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로 행복에 금방 내성이 생겼다. 의학에서는 약에 대한 내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소위 약발을 잘 받기 위해서는 1원칙이 약물을 과하게 쓰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한 내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럼 행복을 과하게 누리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행복했던 시간을 더듬어 가봤다.
수능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친구들과 웰치스 한 캔씩 들고 학교 운동장을 뱅뱅 돌며 수다를 떨었을 때.
대학에 와서는 꼭 중간고사랑 겹치는 벚꽃시즌을 조금이나마 즐겨보려고 중간고사 직전에 짬을 내어 이른 봄 나들이를 다녀왔을 때.
인턴으로 근무할 때는 몇 달이고 하루 3-4시간도 못 자가면서 일하다가 겨우 시간을 내어 모처럼 일기를 썼을 때.
그리고 지금은 퇴근한 후에 틈을 내어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쓸 때였다.
그러고 보니 막간의 휴식이 주는 달콤함, 고생한 뒤에야 느끼는 벅차오름 모두 그 시간을 누리기까지 인내가 필요했다. 오아시스의 가치는 목구멍을 바짝바짝 말리는 사막의 틈에서 생기듯이. 문득 내 앞의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처럼 그 친구가 참아냈을 고단한 하루가 다클서클에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내게 귀 기울여주는 친구를 바라보며 찰랑찰랑 찬 술잔을 내밀었다. 짠~ 하고 꼴깍 술을 삼키며 추임새를 넣는다. "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