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Gwon Apr 30. 2019

위선과 예의는 한 끗 차이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모든 서비스직이 그렇듯이 정작 그 상대에게는 말을 못하니 뒤에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공간이 어딘가엔 있어야 한다. 욕을 하는 대상도 다양한데, 그 중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욕을 많이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걸어 다니는 걸 보기도 싫어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싫어할 만도 하네 싶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욕을 듣고 나는 그 사람이 불편해져서 사적으로 만나는 기회도 줄이고 싫은 건 싫다는 내색도 하다 보니 이젠 부탁하기도 애매해졌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기회 되면 그 사람과 따로 만나기도 하고 부탁할 것 다하고 하하호호 잘 지냈다. 오히려 욕 먹는 그 사람은 자기를 욕하는 줄도 모르고 내게 그 사람들 참 괜찮지 않냐 했다. 그저 웃었다.


사회생활에서 누군가를 향한 안 좋은 감정을 보이는 건 정글에서 보호색을 없애는 것과 같았다. 감정을 숨기는 웃음 가면을 견디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나만 그 사람과 관계가 서먹해지고 남들은 여전히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 필요한 걸 부탁하고 들어주기도 하더라. 그걸 본 이후로는 다른 사람이 날 보고 웃으며 이야기해도 언젠가 이 사람도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됐다. 마음이 불편하니 다른 사람과 눈 맞추는 걸 피하게 됐다. 그들이 내뿜는 욕 에너지에서 벗어나야 했다. 난 그들의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 무엇보다 욕을 정화시킬 능력이 없었으므로.


위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난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걸까?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까? 병원에서 아무도 믿지 말라던 선배의 이야기도 자꾸 귀에 맴돌았다. 내가 아직 세상을 모르고 순진한 걸까? 순진함은 없애야 하는 걸까? 욕 먹던 저 사람은 정말 다른 사람의 가면을 모르는 걸까? 그 사람한테 너 지금 속고 있는 거니까 조심하라고 말해줘야 할까? 아니면 저 사람도 사실은 그들이 위선이란 걸 알면서도 같이 가면을 쓰고 필요한 정도로만 서로 이용하는 걸까?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진심인 걸까?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생각에 출근하는 게 싫어지고 나를 대하는 사람이 모두 웃음 가면을 쓰고 있다가 돌아서면 내 욕을 할 것만 같아서 하루 종일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인간의 위선을 다룬 '인간실격'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보여준 위선을 통해 인간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이 속마음과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고 친한 척을 하는 이유는 책 주인공이 그러하듯 인간의 본 모습에 대한 두려움, 불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알고 나니 위선을 떠는 상대방이 이기적이고 천박하게 보이기 보다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두려워서 그랬던 거구나.


내가 네 앞에서 사냥을 앞둔 짐승처럼 살기를 띠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인간은 상대방의 위선을 귀신같이 안다. 상대방이 내 편인지, 적인지를 알아내는 건 본능이므로. 그런데 상대방이 위선을 떤단 걸 알면서도 같이 허허하고 웃어넘기는 사람 또한,


   인간의 본 모습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다.


위선을 무조건 나쁘고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 아니었다. 연약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충돌 없이 에너지를 절약하며 살아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구나. 피차 서로의 민낯을 보는 것이 힘드니 적절하게 감추는 것도 어찌 보면 예의겠구나. 이제 내게 다른 사람 욕을 하던 사람이 그 사람 앞에서 친한 척을 하더라도, 내게 누군가 입 발린 말을 하더라도 혼자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받을 것이 아니다. 너나 나나 연약한 인간이라서 언제든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띨 수 밖에 없으니까.


상대방과 트러블이 생겨서 지금 기분이 상하더라도 혼자 자존심 세우고 기분 나쁜 티를 내서 상대방에게 날을 세운다고 득 될 건 없다. 상대방 말이 그다지 재미가 없어도 피식하는 작은 웃음, 별 것도 아닌데 싶어도 고생했구나 하는 한마디가 필요하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 세 마디면 결혼생활도 별 탈 없이 유지한다는데 이걸 거짓말이라고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관계를 깨뜨리고 싶으면 싫은 감정 드는 대로 내지르면 되겠지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그런 윤활유는 발라줘야 하고 그게 삶의 지혜겠구나. 아 다르고 어 다르단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부대껴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