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에디냐와 함께한 4년]
병원이라는 곳은 죽음과 맞닿아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죽음을 회피한다. 환자든 의사든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고, 남자 의사들 복장에서 검은 넥타이도 금기이며, 4층이나 444호 병실은 없다. 매일 심폐소생술 방송이 울리고 병색이 완연한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에서 다들 죽음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약속이나 한 듯이 죽음 따윈 없는 척을 한다. 볼드모트가 따로 없다.
그래, 일반인인 환자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의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환자를 품을 수 있어야하지 않은가. 비유하자면, 아이가 혼자 자는 것이 무섭다고 엉엉 운다. 그럴 때 엄마도 무섭다며 아이랑 같이 엄마가 엉엉 울면 아이의 불안은 극대화될 것이다. 엄마가 아이의 두려움을 품어주고 혼자 자는 것은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부드럽게 알려주어 이끌어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지 않은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환자를 돌보는 의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그런데 학부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환자를 살리는가에 대해서는 주구장창 배우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가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성숙한 주치의가 되어 환자의 두려움을 보듬어 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PD가 죽음을 똑바로 쳐다봄으로써 삶을 다시 돌아보고자 했던 것처럼.
아기가 태어날 때는 아기방도 꾸미고 아기용품도 준비하고 태교도 하면서 준비를 해놓고 축복하는데 왜 사람이 죽는 것은 미리 준비하지 않고 축복도 받지 못하고 검은색, 저승사자, 귀신, 공포와 연결되는 건지. 에디냐 수녀님이 생전에 하셨던 말씀처럼 죽음을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의 과정으로 볼 순 없는 걸까.
다른 나라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찾아보았다. 안쓰러울 정도로 죽음을 못 본 척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죽음의 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35위쯤이었다. 한국과 무엇이 다른 고하니, 영국은 매년 5월 죽음 알림 주간을 정해두고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유언장을 써보고, 원하는 장례절차를 의논하고, 입관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관을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해주고,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과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영국에서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죽음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으나 정부의 노력 덕분에 인식이 개선되었다.
death cafe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처음 만난 사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분위기가 어두울 것 같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 웃음이 끊이질 않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긍정적인 죽음을 잠시라도 생각한 후에는 이타심이 커짐을 알아냈다. 기부를 많이 하고, 우울증이 오히려 감소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감소하고, 자신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증가하고, 삶의 행복 지수가 증가하며,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뭣이 중헌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웰빙에 관심 갖는 만큼 웰다잉에도 관심을 갖고 죽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곧 사회가 성숙해지는 방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먹는 것, 자는 것,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뭐 먹지, 어제 잠을 잘 못 잤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각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길. 에디냐 수녀님께서 돌아가시면서 PD에게 하신 말씀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였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면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진심을 다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