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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Sep 12. 2022

영국의 웰다잉 문화와 호스피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레이첼 클라크 지음


내년 선택실습으로 해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웰다잉과 호스피스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배우기 어려워 이번 기회에 해외에서 배워오고 싶었다. 그래서 웰다잉 문화의 시작점이자 전세계에서 죽음의 질 지수가 가장 높은 영국에 문을 두드렸다. 여기저기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한 호스피스 센터에서 승낙을 받았다. 영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보다 공적이고 사회주의적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호스피스 센터 케어를 포함하여 모든 의료가 무료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 보장처럼 좋은 죽음 또한 국가가 보장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영국은 매해 5월에 웰다잉 주간이 있어서(크리스마스나 개천절처럼 고작 하루가 아니다.) 그 기간에 다양한 행사로 웰다잉 문화를 전파하고 웰다잉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장려한다. 죽음에 대한 국민적 인식뿐만 아니라 사회 및 의료제도의 수준까지도 높다. 그곳에서는 어떻게 생애말기 환자를 케어할까. 이 책은 그 답에 쉽게 접근하게 해주었다. 영국 호스피스 의사가 말기암 환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경험을 쓴 책이기 때문이다. 영국에 가기 직전 한 번 더 읽어볼 예정이다.


이 책은 영국의 웰다잉, 호스피스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하는 생각이 든 책이기도 하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소탈한 솔직함으로 누구나 마음 속에 갖고 있는 공통적인 본질을 울리는 글이다. 그동안 다른 호스피스 의사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었으나 이 책만큼 깊이 있는 고민이 느껴진 책은 없었다. 어쩌면 다른 저자들도 충분한 고민은 했을 테지만 작가로서의 역량에서 차이가 났을 수도 있다. 이 저자는 의대에 들어오기 전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의사와는 다른 분야의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세상에는 의사 세계의 정의와는 다른 정의와 다른 가치관 또한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당연한 듯 생각하는 행동과 생각에 의문을 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질병에 치우친 진료는 당연하지 않다. 사람이 먼저다.


심정지 환자가 생기면 CPR팀이 득달같이 달려와 심장에 전기충격을 주고 약물을 주입하고 갈비뼈를 으스러뜨리도록 격렬하게 가슴압박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거나 상태가 너무 악화돼 심장이 다시 뛰어도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경우 이 안간힘의 결말은 예외없이 추하고 잔인하다. 존엄이라곤 찾을 수 없다. 그동안 병원에서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추하고 잔혹한 죽음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우리가 그보다는 잘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질병에 관해서만 꾸역꾸역 배웠다. 내 뇌는 명칭과 수치, 약물과 진단으로 터져나갈 듯했지만, 혼란스럽고 불확실하고 일관성 없고 엉뚱하고 잘 까먹고 두려워하고 의심스러워하는 평범한 인간에 대해서는 배운 게 별로 없었다. 병원에선 왜 아내가 죽어가는 남편 옆에 누워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없는 걸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우리는 왜 배우자와 환자가 사랑을 고백할 방법을 먼저 찾아보지 않는 걸까? 중환자일 때만 진정한 환자 중심의 병원 환경을 누리는 것일까? 그들이 어찌할 줄 몰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왜 그냥 지켜보기만 할까? 도심의 암 전문 병원에 머무는 3개월 내내 환자는 신선한 공기를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교수, 과학자, 첨단 장비로 무장한 임상팀 등 의료진의 모든 에너지가 오로지 치료에만, 생명을 구하는 데만 집중되면, 환자에게 바깥 공기를 쐬게하는 등의 세심한 사항은 전혀 고려되지 않거나 뒷전으로 밀려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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