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장기하
나는 MBTI에서 슈퍼 J다. 내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여유롭기 위해서이다. 여가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구분함으로써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변수가 생겼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게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도구와 목적이 본말전도되어 여유롭고자 하는 목적은 사라지고 계획이라는 도구에 얽매이기 일쑤이다. 예를 들면, 일부러 일찍 등교하는 이유는 한적한 지하철을 타서 앉아서 등교하고, 학교에서 아침도 먹고, 오늘 외래나 회진에서 볼 환자를 미리 확인하면서 여유롭게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걸 하기 위해서 몇 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하고 그러려면 집에서 몇 분에 출발해야하고, 몇시쯤 학교에 도착해서 아침은 몇분만에 먹고 컴퓨터실에서 외래까지 가는 동선을 생각해서 언제 컴퓨터실에서 출발해야 하는지까지 생각을 해놓는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추려고 마음이 오히려 조급해진다. 아이러니다.
‘여유’는 내게 늘 화두였다.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과연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인지 학창시절부터 의문이었고(나름대로 내린 답은 ‘불가능하다’이다), 매사에 여유로운 사람이 존재하는지 의문이고(나름대로 내린 답은 ‘없다’이다), 내가 원하는 여유로움은 무엇인지도 의문이고, 여유와 게으름과 무심함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여유’가 상당부분 의문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건강하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롤모델을 아직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장기하님이 내가 찾던 롤모델이 아닐까 싶었다. 단정적으로 장기하님이 내 여유의 롤모델'이다'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롤모델이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여유있게 고려해서랄까.
내가 원하는 여유로움에는 ‘다름을 수용하는 태도’가 포함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가 체화되면 장기하님이 되겠구나 싶었다. 유들유들한 그의 태도에서 여유가 느껴졌고 단단한 자아가 느껴졌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초연한 태도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과 그가 늘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가치는 상대적이며 우리는 모두 변한다는 것이다. 깔끔한 엄마 옆에선 내가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정리정돈 더 못하는 친구 옆에선 결벽증 환자로 불리고, 누군가와 있을 때는 길치 취급을 받다가 누군가와 있을 때는 길 잘 찾는 사람이 된다. 절대적인 특성으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특성이란 것은 상대적임을 알고 바라보는 장기하님의 시선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포용이었다.
이 책에서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여러차례 강조한다. 장기하님 본인은 이러이러한 걸 좋아하고 저러저러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닌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 나름의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했다. 이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한다. 깔끔한 어머니께서 정리정돈 못하는 자신에게 화내지 않고 그런 사람이려니 하시고는 장기하님이 없을 때 방을 치워주셔서 감사했다고 한다. 자기 차보다 더 좋은 차가 지나가면 상대가 과소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전상의 이유나 각자의 여러 생각으로 차를 샀을 거라고 이해하고 그보다 저렴한 차를 타도 자신의 삶이 잘 굴러가는 것에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헸다. 군대는 어릴 때 가야된다든지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든지 하는 말은 직접 경험헤 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했다.
그의 생각을 읽으며 계속 반성했다. 학교에서 9살씩 어린 동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조언이랍시고 ‘라떼는 말이야’를 곁들인 참견을 하곤 한다. 말을 줄여야지 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에도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해서라기 보다는 꼰대소리가 듣기 싫어서 참는 것이었다. 나는 20대 초반까지 흑백논리가 강했고, 그 이후로 흑백의 경계를 없애려 노력을 하면서 많이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나를 보면 다시 흑백 경계가 뚜렷해지는 것 같다. 가치는 흑백이 아니라 온갖 색의 그라데이션임을 잊지 말자. 지금은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닌 억지 노력이라 할지라도 일단 내 말을 줄이는 것이 첫번째이다. 그리고 듣자. 예전에도 경험했듯이 억지로라도 듣다보면 귀가 트이는 시기가 온다.
내가 원하는 여유로움에는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도 포함된다. 장기하님은 평소에 힘을 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변화가 왔을 때 뚝 꺾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휘어지고 구부러져 변화에 적응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달리기도 1-2년씩 못한 시기도 있었지만 늘 호감과 관심을 갖고 기회가 되면 한다고 했다. 나였다면 달리기를 하지 못한 1-2년의 시기 동안 계속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그는 꼭 달리기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순수한 호감과 관심으로 달리기를 대하는 듯 했다. 이 책 본문에서 인공지능 음악추천 기능이 참 좋다고 글을 한 편 써놨다가도 책 에필로그에서는 인공지능 음악추천 기능이 그 정도로 또 좋은 건 아니더라고 하며 자신의 생각도 변화함을 보여줬다. 라면을 예찬하는 글도 한편 있었는데 에필로그에서 또 요즘은 또 예전만큼 라면을 찾진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인간미 넘치는 사람 같으니라구. 그래, 인간은 모순덩어리지.
생각과 취향이 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이 외부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서퍼에 비유한 것도 와닿았다. 예전에 나는 ‘개구리밥’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서퍼에 비유한 것이 참 반가웠다. 작디작은 서퍼로서 거대한 파도와 바다 앞에서 슬퍼할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나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한다고 했다. 개구리밥으로서 그저 파도에 몸을 내맡겨야 한다고 한 수동적인 나와는 달리 장기하님은 능동적인 서퍼로서 파도를 즐겨야한다고 하는 점이 큰 차이점이었다.
그는 몸이 뻣뻣해지는 질병 때문에 기타 연주를 포기했지만 그 덕분에 새 기타리스트인 하세가와 요헤이님을 영입할 수 있었고 무대에서 악기없이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에서 느끼는 희열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당연히 할 수 있던 일을 오늘 갑자기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괴롭긴 했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상황에 맞춰 계획을 세워왔다. 그러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다른 길이 열려왔다고 했다. 나는 이걸 20대 때는 몰랐으나 30대가 되면서 살아온 시간이 쌓이자 확실하게 느꼈다. 내 삶을 돌아봤을 때에도 그랬다. 평생 볼 줄 알았던 연인과 헤어졌지만 덕분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는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던 친구와 절친이 되기도 하고, 한의사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정보를 얻어 의대 편입을 하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한 태도이다. 앞으로 무슨 과를 가게될지, 결혼은 할지, 출산은 할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오히려 너무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한다면 삶이 너무 팍팍하다. 삶의 모호함을 기꺼이 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