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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Gwon Sep 12. 2022

인턴레지던트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잃었나

[하우스 오브 갓] 사무엘 셈 지음


다시 읽어봐도 이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매끄럽지 않다. 그리고 아직 생각과 감정이 건강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결론없는 징징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곱씹으며 퇴고를 하기엔 아직 상처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브런치에 올리지 않으려다가 이런 고민의 흔적 또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글을 남겨보기로 했다.


하우스 오브 갓은 의사인 작가가 1960년대 미국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몇십년 전 모습이다보니 지금과는 다른 부분이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수련생활에서 인간다움을 상실한다'는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지금은 탈국한 지 2년이 넘게 지나 디톡스가 많이 되었지만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어쩌면 그 때의 상처들은 평생 갈지도 모른다. 많은 걸 배우며 성장했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런 것을 상쇄할 만큼 스트레스가 심한 시기도 꽤 있었다. 탈국하고 나서는 최대한 병원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 4년을 보내면서 독소를 배출할 여유가 부족했다. 그리고 아직 나를 잘 몰랐던 시기였기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 때의 기억을 건강하게 소화해낼 여력이 없어서 그냥 덮어두었다. 그런데 의대에 와서 다시 공부를 하다보면 종종 기억소환이 강제로 이루어졌다.


아 그 때 그 환자.... 그 교수님.... 그 선생님.... 그 때의 나....


그래도 공부하는 게 바빠 깊이 돌아보진 못했다. 그런데 이 두꺼운 소설은 한문장한문장마다 강제로 내 앞에 당시 기억을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몹시 공감하면서도 아팠고 위로가 되었다. 다들 인턴레지던트 시절을 아등바등 힘들 게 지냈구나. 내가 유별나서 그렇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그 때의 나는 '회피'라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쓰곤 했다. 마치 이 소설 주인공처럼. 그래도 주인공의 연인은 다행히 정신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라 주인공이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쓸 때마다 이상함을 짚어주고 중심을 잡아준다. 연인이 말했다,

'너는 무신경한 듯 보이지만 그거 다 연극이더라고. 너는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그랬더니 주인공이 답하길

'당연히 신경써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인은

'그런데 왜 신경쓰지 않는척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공은

'그게 거리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니까'라고 답한다.

그래, 나도 그래서 그랬더랬지.


이 연인은 주인공에게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보단 주인공의 흔들리고 아픈 마음을 이해해준다.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편집증에 걸린 것 같다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속이는 것 같고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다는 주인공의 말에 연인이 이렇게 답한다.

'편집증은 괜찮아. 편집증은 그저 좀더 원시적인 방어일 뿐이야.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생각이 들면 외로움의 절망감에 빠지지 않게 돼.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지.'

아 외로웠던 거구나. 편집증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니. 그때의 난 스스로 문제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만 했다.


책에 나온 에피소드 중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환자에게 주인공이 갖은 고민을 하다가 KCl을 주입하는 이야기가 있다. 의사조력자살인 셈이다. 미국에서 웰다잉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의미없는(이 또한 주관적이지만) 치료(그것도 침습적이고 공격적인 치료)를 하다보면 이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온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사람을 왜 살려야 하는지(살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에 대해 깊이 배우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다'고 여기는 것이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KCl을 주입하기까지 온갖 고민을 하는 모습에서 많은 공감을 했다. 함부로 '어떻게 의사가 그럴 수 있냐'고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또 씁쓸하게 읽은 대목은 일 잘하는 인턴은 바로 '환자를 받지 않고 토스하는 것'이라고 한 부분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부분인데 실제 임상에서도 그런 경우가 자주 있다. 특히 응급실 그리고 다른 과로 전원 보낼 때. 환자 수가 적어야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최대한 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자기 과에서 환자를 보지 않으려는 이유를 대며 다른 과로 넘긴다. 그걸 잘 하는 게 일 잘하는 인턴 레지던트이다. 내가 수련을 받을 때 환자를 많이 받는 인턴 레지던트에게 '넌 피가 더럽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그런 표현 자체도 거북스러웠다.


상태 호전이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한 노인 환자를 이 소설에서는 '고머'라고 표현한다. 그들을 물건처럼 대하고 혐오를 그대로 드러내는 등장인물들도 있고, 누군가는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던 주인공도 어느새 동화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환경을 겪어본 나로서는 눈에 선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또한 '너네 가족이라도 그럴 수 있냐'고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환자를 다 가족처럼 대하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잠 못 자고 밥 못 챙겨먹고 스트레스 풀 시간도 없이 계속 일을 하다보면 의사도 인간인지라 정신이 피폐해질 수 있다. 물론 그것으로 정당화할 순 없지만.


이래저래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고 결론 없이 끝나면 이 책은 철학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의 기본 기승전결에 충실한 덕분에 후련하게 끝이 난다. 결론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였다. 이 또한 몹시 공감했던 부분이다. 예전에 내가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쓴 독후감에서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힘없는 개구리밥에 표현했고 개구리밥끼리 거센 물살을 대신 맞아주진 못하지만 함께 물살을 맞으며 내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개구리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다른 개구리밥에게 힘이 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고 썼다. '하우스 오브 갓'에서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개구리밥들도 많은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도와주면서 어려움을 겪어낸다. 내 이전 수련생활은 이 연대의식이 부족했다. 왜 부족했던 것인지는 아직 더 들여다 봐야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수련생활을 하면 '인간다움'을 잃는다고 하는데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내겐 '나다움'을 잃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건 왜하는 거지?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순 없을까? 하는 의문은 금기였다. 뭔가를 더 배우고 싶어도 혼자 하면 이기적이라고 하고 같이하면 괜히 일 크게 만든다고 한다.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누군가를 욕했다. 오랫동안 내려온 체계를 바꾸려면 내가 총대를 매야 하는데 그럴 여력도 없었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나댄다'고들 했다. 그러다보니 남들 하는대로, 의문이나 의견은 가지지 않는. 그냥 하나의 부속품으로 4년이라는 수련기간만 채우고 나오면 되고 굳이 그 일은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 머릿수를 채울 사람만 있다면 난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부품이었다. 그래, '나다움'을 잃는 것이 상처로 남았나보다.


의대에 입학해서 병원실습을 도는 요즘, 환자들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시 수련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 때는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때처럼 순진하게 마냥 사명감만 갖고 임상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현실적인 면을 알고 다시 시작할 수련생활이다.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주저 앉은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인간의 모습임을 받아들인 상태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품고 함께 나아가기에는 이러한 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실습을 돌면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더 많이 배우고 느껴야지. 그게 미래의 나와 동료와 환자들을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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