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2022년에는 본과 3학년 병원 실습을 나갔다. 길면 1달, 짧으면 1-2주마다 실습과와 병원이 바뀌었다. 본과 1, 2학년 때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수업이었기에 자취방에서 수도승처럼 하루종일 말한마디 하지 않고 산 적도 꽤 있었다. 그래도 의대 편입 전 4년간 인턴, 레지던트를 하며 번아웃이 온 상태였기에 다행히 그런 생활이 필요하기도 했고 잘 맞기도 했다. 조용했던 지난 2년에 비해 2022년은 만나는 사람이 많아졌고 생활환경도 자주 변했다. 1학기에는 1달에 한번씩 턴을 해서 괜찮았다. 심지어 그 중 2달은 편한 일정이었기에 환경이 바뀌더라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2주간 타병원 서브인턴도 다녀왔다.
그런데 2학기는 1-2주에 한번씩 턴을 했다. 일주일의 생활패턴은 이랬다. 일요일은 이동, 월-화요일은 적응하고, 수-목요일은 과제하느라 잠을 2-3시간 밖에 못잔다.(미리 과제를 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금요일에 과제발표를 하고 집으로 다시 짐싸서 돌아오면 피곤하지만 토요일 수업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이틀간 잠을 많이 못자서 집중력이 떨어지다보니 효율은 낮다. 잠은 또 부족해진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말그대로 뻗어서 12시간을 내리잔다. 그리고 다시 일요일이 돌아오면 다시 짐을 싸서 이동한다.
1년간 계속 배낭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이동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적응할 만하면 또 떠나고, 눈 앞에 닥친 일정을 하나하나 소화해나가는 것이 배낭여행과 닮았다. 몸이 힘들어도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면서 즐거웠다. 어쩌면 난 외향형일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추억을 많이 만들었고, 느끼고 생각할 거리도 풍성했다.
문제는 버퍼 기간이 없었단 것. 12월이 되자 3년만에 번아웃의 기운을 느꼈다. 12월 마지막날까지도 못 쉬다가 1월이 되면서 겨울방학 3주가 주어졌다. 그런데 힘이 남아있던 과거의 내가 신청해놓은 타병원 서브인턴 일정이 있었다. 서브인턴까지 하고 나니 겨울방학이 한 주 남았다. 그마저도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을 하느라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1월에 동기를 만났는데 내가 지금 지친 상태라고 하니 자기도 그렇다며 템플스테이를 알아볼 건데 몇 개 정보를 줄까하고 물어봤다.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에 안 그래도 템플스테이 생각을 했는데, 그마저도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한다 생각하니 부담이었다. 정보는 이제 그만 알아보고 싶었다.
이틀정도 그저 책읽고 글쓰고 뒹굴거렸다. 온열장판으로 데워신 따뜻한 극세사 이불 속에서 아이패드를 토각토각거리며 무슨 책을 읽을까하고 ebook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20대에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돌연 태국에서 스님이 된 비욘. 그가 17년간 불교 수행을 하면서 깨달은 점을 편안한 어투로 전하고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원하던 내게 마침 딱 맞는 책이었다. 새로운 자극들로 소란스러워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가만가만 귀기울이게 해주었다. 삶은 불확실한데 이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지혜로운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저자는 일상 속 다양한 경험을 예로 들어 잔잔하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해준다.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해야된다며 머릿 속이 소란스러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잠잠해졌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책 제목으로도 쓰였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가 나온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사람과의 만남은 편안했고, 어떤 사람과의 만남은 딱딱했다.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내가 얻은 답은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를 인정하는지 여부였다.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간에. 적어도 '내가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들어는 보자'하는 태도와 아닌 태도의 차이는 컸다. 상대방 생각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들어보면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와 다른 생각의 씨앗이 일단 내게 들어오면 언젠가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가지를 내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숏컷 하지마라, 바디프로필이 쉬운 줄 아냐, 나이 서른에 무슨 의대냐 하고 다른 가능성을 막는 말 앞에서 답답했던 기억이 다시 났다. 내가 갑작스러운 결정을 한 것 같겠지만 그 씨앗은 예전에 이미 누군가가 심어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씨앗으로 열린 새로운 세상은 퍽 재미있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막는 말을 하곤 했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의 틀에 자꾸만 빠졌다. 그럴 땐 이 책에서 알려준 마법의 주문을 외자.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생각났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