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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유진 Jan 29. 2023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우리 책이 소개된 사연

노마드의 도시로 소개된 세종시

매거진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에서 연락받다.


만약 여행지로 세종시를 추천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세종에 뭐가 있죠?"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올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호수공원 산책하기 좋아-라는 말밖에. 7년 동안 세종시에 살았던 나조차도 이 도시를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행이라는 단어와 한 번도 연결 지어 본 적 없는 (노잼) 계획도시에 익숙해져 있던 차에 별안간 여행 잡지사로부터 인터뷰 요청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김호경 에디터입니다. 2022년 2월호 피처 인터뷰 기사에서는 세종시를 여행지적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키워드는 '이방인, 로컬, 요즘 세종, 세컨드 도시'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전화를 받고 잠시 멍-했다가는 내적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아는 그 내셔널지오그래픽..이라고.?'

'아니, 국내 로컬 여행지로 소개할 곳이 그렇게 많은데 세종을 (굳이) 소개한다고..?'

'아니, <나의 사적 세종 이주기>* 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는 나와 두 명의 친구들이 2020년에 발간한 인터뷰집이다.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 책에도 이 인터뷰집을 만들게 된 배경을 소개했었는데, 요약하자면 '가족과 함께 세종으로 이주한 30대 여성의 커리어와 삶을 다룬 글이다.


잡지사에서 '계획도시인 세종시에 과연 로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품으며 취재 조사를 하던 중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 인터뷰집을 읽게 되었고, '이들을 장기 여행 중인 노마드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은 독특한 관점으로 세종이라는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무엇보다 '장기 여행자로 소개하고 싶다'는 말에 저는 덜컥 인터뷰를 수락했다. 여전히 이방인 같은 내 영혼을 알아주는 기분이었으니까.


이방인들의 도시 - 세종시 여행


그렇게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2022년 2월호에 '이방인들의 도시 - 세종'에 저희 이야기가 실렸다. '내가 뭐 세종시 홍보 대사도 아닌데 왜 뿌듯하지?' 란 생각을 하면서 한 장 한 장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에디터님의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된 제가 쏙 마음에 들었으니까.


7년째 장기 여행중 | 세종시로 이주한 지 햇수로 7년 차입니다. 하지만 현지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세종시는 정착지가 아니라 정류장이거든요. 그러니 저는 이방인도 로컬 피플도 아닌, 그 사이에 유영하는 장기여행자쯤 되겠네요.
창작의 근원지 | 세종시 이주 경험을 토대로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세종, 김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3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로 떠난다는 건 멀리서 보면 낭만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모험과 같아요. 그 세세한 장면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창작의 근원지라고 이름을 붙여보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


나는 단 한 번도 세종이라는 도시를 노마드의 일터, 창작의 근원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코 영감을 주는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호경 에디터님은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 에세이집을 출간하게 된 이야기를 듣더니 '세종이라는 도시가 유진님에게는 창작의 근원지였네요!'라고 새로운 해석을 보태어 주셨다.


아파트로 꽉꽉 찬 신도시를 포클레인으로 떠서 충청도에 심겨 놓은 것 같은 세종을 창작의 근원지라고 표현하는 건 좀 어색했다.


보통 창작가, 디지털 노마드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제주, 발리, 강릉이지 않나? 바다에서 서핑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곳곳에 있을 것 같은 도시들 말이다.


그런데 창작의 근원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어쩌면 영감을 주는 도시였지 싶은 거 아닌가?


나에게 이 도시는... 영화에 나올법한 낭만적인 장면과 특별하고 극적인 만남이 있었던 곳이라기보단, 오히려 외롭고 뼈아픈 고민과 번뇌가 가득한 도시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아픔과 시련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도시에 살면서 '나는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더욱 또렷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한때 아주 심각했던 고민도 특정 시기가 지나면 또 까먹고 휘발되곤 하는데, 그런 고민 중에 어떤 것들은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아있지 않는가. 나에게는 그게 '결혼 후 지역 이주', '남편 따라 온 아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다가도 이 주제에서만큼은 자꾸 단호해지고 진지해졌다.


내 신념을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위로받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아주 운명을 거스른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험들이었다. 그렇게 용기를 얻다 보니 제가 고군분투한 경험을 나누고 싶었졌고.


그런 열망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 아닐까 성찰해보게 된다. 그 시작점이 세종이었으니 창작의 도시, 맞다.



당신을 알아봐 주고 싶어요!


창작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 그 에디터의 한마디가 세종에서 보낸 약 7년의 시간을 의미 있었던 경험으로 정리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오래 전 국내 1호 간호학 박사인 故 김수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정신질환 환자들이 대화를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효과적인 대화 패턴을 10가지를 발견했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력은 '알아봐 주기'였고 가장 작은 영향력은 '수용'이었다고 한다.


즉, 공감하는 것이 기본이라면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이 사랑과 돌봄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파도가 세구나. 얼마나 살이 에일지. 너의 감정을 이해해"라고 수용하는 것보다 "너는 돌고래야!" 라고 가치 있는 존재로 알아봐 줄 때, 삶의 의지를 더욱 크게 발현시킨다.


있는 그대의 모습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따뜻한 공감이지만, 되고 싶은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것도 공감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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