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의 믿는 구석

백 번의 주먹 끝에, 한 번은 제대로 맞는다.

by 또리

복싱하는 사람들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나보다 강한 주먹은 없을 거야.' '저 사람은 잽이면 되겠지.'같은 신체적 자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복싱을 하다 보면 나보다 힘이 세고 강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된다. '체급은 깡패'라는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기술자가 되더라도 나보다 10kg 더 나가는 상대랑 스파링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주먹이 통하지 않는 무력함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복싱을 할 때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다 보면 성취감보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과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평가를 받고 나면 마치 벌을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끔 보다 보면 참 안쓰러운 사람들이 있다. 저렇게까지 애쓰는데, 왜 안 될까 싶은 사람들. 나는 학창 시절부터 그런 시선에 익숙한 조금 안타까운 학생이었다. 반에서 가장 엉덩이가 무거운 학생이었고, 선생님을 대신해 이것저것 맡는 대표 학생도 늘 내 몫이었다. 그랬던 나는 500명 재학생 중 전교 6등으로 졸업했고,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이 학생 대표에게 주는 상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단상에서 상을 받은 학생 10명 중 유일하게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이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워야 할 자리였지만, 내게 그 졸업식은 상처로 남았다. 축하받는 자리에서조차 나는 결국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이었고,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다시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단상에서 상을 받은 9명의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이미 3년이나 해 온 공부를 1년 더 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취업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한때 인생의 운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한 만큼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동기들이 취업하고, 어느새 대리가 되어 갈 때까지도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해보지 못했다. 수많은 회사가 내게 시작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3년간의 취준 후 드디어 직장을 갖게 되었다. 하는 것에 비해 저평가받은 나날들에 지쳤다. 내가 요령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나를 탓하기도 이제 지칠 무렵, 회사에서 첫 성과평가를 받게 되었다.


반전은 없었다.


성과평가 잘 받았지? 당연히 받았을 거야. 그런 말들이 오히려 더 마음 아팠다. 회사에 오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는데 왜 또 이런 결과일까. 이제는 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일도 지쳐 버렸다.


성과평가를 받은 날,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나는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배달음식을 실컷 시켜 폭식하며 TV만 봤다. 영화 위대한 쇼맨 의 〈This Is Me〉는 꼭 나의 이야기 같았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길래,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버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내 탓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나를 몰아붙이지 않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계속해 나간다.


비록 여전히 나의 평가는 조금쯤 낮게 매겨지더라도, 가끔은 아무도 나를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 원투를 날리고 쓱빡까지 날린다. 복싱을 하면서 배운 원투는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신 매일같이 쌓이면 언젠가 누군가는 그 투에 무너진다.

나의 운동 루틴은 단순했다. 3라운드의 줄넘기 후 5라운드의 원투, 샌드백도 5라운드 원투만 쳤다. 영상 속 사람들은 화려하던데 원투만 쳐도 괜찮을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1년 동안 원투만 쳤다.


1년 후, 첫 대회에서 원투로 상대의 고개가 넘어갔다. 그 때 비로소 반복의 힘을 느꼈다.


나는 복싱을 하면서 배웠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매일같이 주먹을 날리다 보면 수없이 날린 주먹들 중 하나가 마치 우연처럼 정확히 적중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예전에는 그것을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버틴 사람이 결국 맞히게 되는 필연이라는 것을.


이렇듯 복서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백 번의 주먹 끝에, 한 번은 제대로 맞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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