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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ay Feb 03. 2022

마지막이 될까봐

2년 2개월의 장거리 연애를 마치고, 독일에 사는 신혼 부부 이야기

 날씨가 좋으면 집 밖으로 나가 라인강변을 걷곤 한다. 강물에 반사된 강한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강바람을 느낄 때면 어떤 고민이든 잠시 내려놓게 된다. 남편과 나는 유독 지치는 날, 그러나 날씨는 끝내주게 좋은 날엔 근처 마트에서 빵 하나씩 사서 강 건너 마을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시덥잖은 농담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서 보이는 라인강변은 사실 사진으로 찍기엔 너무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수풀들 때문에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다. 배를 타고 1분이면 갈 수 있는 건넛마을은 꽤 부촌이라 들었는데 같은 라인강변이지만 걷기에 훨씬 낭만적이고 길이 다듬어져 있다. 저런 곳에 집 한 채 있었으면 좋겠다며 푸념도 하며, 남긴 빵조각에 달라붙은 날파리를 쫓으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곳은 우리의 신혼 생활을 시작한 첫 번째 동네이자, 손잡고 걷기만 해도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다.


  불과 2년 전에도 우리는 이곳을 함께 걸었다. 그때의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롱디 연애를 시작한 직후였고, 함께 있는 시간은 편안함보다는 불안함과 애틋함, 슬픔으로 가득 찼다. 독일에서 박사 과정 유학을 시작한 애인과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나의 끝을 알 수 없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고, 거의 한 달을 내내 슬퍼하던 내가 추석 연휴에 며칠 더 휴가를 써서 독일로 왔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우리는 여행이 시작된 날부터 언제 헤어지게 될지 날짜를 세 가며 수시로 눈물지은 덕분에 대부분의 사진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거나, 전날 밤 흘린 눈물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시 이곳을 걸을 수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장거리 연애에 지쳐 헤어지진 않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슬퍼졌다.


  우리는 남들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곳을 걸었다. 1~2시간이면 파리도, 밀라노도 갈 수 있는 유럽인데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애인의 학교 캠퍼스와 도서관, 카페를 오가며 마치 내가 곧 입학할 학생이라도 된 마냥 눈에 건물들을 익히며 걸었다. 본(Bonn) 대학교는 프리드리히 니체와 칼 마르크스가 다녔던 200년이 넘는 전통 있는 학교라는 설명을 들으며 공을 차는 학생들로 가득한 교정을 함께 걸었다. 한국에서는 교회 건물에서나 있을 법한 첨탑이 있었고 넓은 지붕이 가로로 길게 늘어선 노란 건물이 학교라기보단 근사한 관광지 같았다. 처음 본 대학교의 교정을 걷던 날의 햇살은 눈이 잘 떠지지 않을 만큼 뜨거웠고 하늘은 더욱 진한 파랑이었다.


    그해의 나에게 가장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은 대단한 관광지도 아닌 바로 그 교정이었다. 현실감 없는 평화로운 그곳을 걸으며 막막함과 불안함이 녹아내렸다. 여전히 머릿속은 끝을 알 수 없는 우리의 현실로 인해 복잡했고, 며칠 뒤면 끝나버릴 짧은 여행에 조바심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안심이 됐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햇살과 풍경에 마음 깊숙이 위로를 받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매일 걸을 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마음을 놓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가는 곳마다 애인의 흔적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자주 가게 될 도서관에 함께 들어가 보고, 도서관 안 카페에 앉아 마치 나도 재학생인 듯 커피를 마셨다. 늘 대학교 안의 기념품은 대체 누가 사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현금을 탈탈 털어 대학교 로고가 크게 박힌 후드티와 머그컵, 야구 모자도 하나씩 샀다. 도서관 안의 학생들은 저마다 굉장히 바빠 보였고, 두꺼운 책들을 가득 안고 삼삼오오 모여 다녔다. 한 눈에 봐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때론 독일어로, 때론 영어로 대화하는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정작 학교 다닐 땐 지긋지긋해했던 나도 4년 차 직장인이 되어 대학생들을 보자 그들의 에너지와 진지함에 묘한 부러움이 들기도 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 근처까지 걸으면서 시작할 학기를 앞둔 애인의 긴장감과 걱정을 듣다 보니, 처음 온 곳이지만 편안하고 익숙하게 이 학교에 스며들었다. 적어도 그 순간엔 애틋함보다는 진지한 격려가 오갔다.


   지금은 신혼집이 된, 당시 애인의 집은 집 앞에 라인강이 흐르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기차역이 코앞이라 어디든 다니기 편했고, 집집마다 큰 나무와 넓은 정원이 있어 동네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동네 산책만 해도 하루가 다 갔다. 매일 손님이 줄을 선 집 앞 빵집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 먹고, 자전거를 빌려 배를 타고 강 건너 마을을 구경했다. 하얗게 머리가 센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출출하면 눈에 보이는 가게에서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먹었고, 아무거나 골라 집어도 맛있는 독일 맥주에 감탄하며 이 곳이 독일이구나 실감했다. 일주일의 대부분을 별다른 계획 없이 손잡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보냈다.


  이따금 차오르는 불안을 잠재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떠나기 전날 밤엔 또 울었다. 지난 일주일이 너무 평화롭고 따뜻해서 더 슬펐다. 괜찮을 것 같았지만 역시나 괜찮지 않았다. 내일 공항에서 헤어질 땐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아서 차라리 혼자 공항에 가겠다고도 했다. 처음 해보는 떡볶이와 잔치 국수를 애인에게 해줬고, 나는 한국 가면 먹지 못할 납작 복숭아를 마지막 밤까지 열심히 먹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의 아침이 밝았고, 나는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애인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애인과 헤어져서 곧장 한국으로 오면 돌아오는 내내 펑펑 울기만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마지막 일정은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와 이틀을 베를린에서 보내기로 했다. 애인과 달리 친구는 언제봐도 까르르 웃고 놀 수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 덜 힘들 것 같았다. 공항에서 엉엉 울며 인사하고 겨우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다섯 시간이나 연착됐다는 메일이 왔다. 기다리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방금까지 울다가 앞으로 다섯시간 더 함께해야 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공항 밖으로 나가기도 애매한 다섯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뭐야 우리 왜 아직 같이 있어?”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갑자기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할 것도 없고 지루한데 빨리 비행기 탔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툭툭 나왔다. 순간순간 차오르는 슬픔과 애틋함으로 일주일을 보냈더니, 갑작스레 주어진 다섯 시간을 또 슬퍼하며 보내기엔 기력이 딸렸다. 순식간에 이별이 가벼워졌다. 덕분에 베를린행 비행기는 홀가분하게 탈 수 있었다.


  애틋했던 그때의 우리에겐 손잡고 걷는 모든 곳이 예뻐서 오히려 슬펐다. ‘마지막이 될까봐'라는 렌즈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때 눈에 담아두었던 곳들은 일상처럼 지나쳐도 특별했던 기억이 스친다. 요즘은 남편이 다니는 본 대학교 바로 앞의 어학원을 매일 아침 다니고, 수업이 끝나면 근처 아시안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돌아오는 똑같은 오전을 보낸다. 겨우 기초 수업인 주제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독일어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코너만 돌면 보이는 본 대학교를 볼 때마다 다시 2년 전의 일주일이 떠올라 특별해진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슬펐던 기억은 이제는 익숙해진 이 동네와 똑같은 일상에 따뜻한 색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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