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더 고마운 사람
처음 보는 생명체였다. 내가 보고 알던 사람들하고는 달랐다.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은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눈빛이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만나는 장소도 달랐고 하는 이야기 분위기도 달랐다. 술 몇 잔에 자신의 속마음을 내 비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신기했다. 그런 그가 나는 좋았다. 왠지 저 사람과 함께 한다면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처음 만난 날 그 사람 뒤에 후광이 비쳤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그 사람 뒤가 더 환해 보였다. (조명 탓이었을 수도...)
매일 만나며 그 사람의 세상과 내 세상은 점점 하나가 되고 있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고민 없이 이 사람과의 결혼을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는 6개월 만에 부부가 되었다.
나는 불교신자였다. 어렸을 때 우리 집 뒷마당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다. 엄마는 음력 1일, 15일 되면 물을 떠놓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신을 향해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아무리 바빠도 절에 가셨고 자라를 방생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글을 쓰다 보니 불교가 아니라 무속신앙이 맞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엄마는 점도 보셨고 가끔 굿도 하셨던 것 같다. 가끔 떠오르는 기억에 엄마가 굿하고 남은 음식을 가져오셨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지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종교를 바꾸시겠다고 성당, 교회를 다녀오셨다. 다녀오신 후 엄마는 쓰러지셨다. 말도 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다시 점 집으로 굿터로 데려가셨고 엄마는 며칠 후 다시 일어나셨다. 말도 하시게 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종교를 바꾸면 엄마 아빠가 아플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내 친한 친구들의 종교도 무교이거나 불교이거나 무속신앙이었다. 함께 용한 점집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고 한 친구는 굿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만난 그 새로운 생명체는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뒷모습에 후광이 비췄지만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의 연락을 받지 않았었다.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신 후였지만 그럼에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와의 만남 이후 보름쯤 지났을까? 나는 감기 몸살로 약을 먹고 잠에 취해있었다. 전화벨 소리에 화면을 보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내가 아픈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내가 아파서 그동안 전화를 못 받은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전화가 그 남자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전화였다고 한다. 이 전화도 안 받으면 마음을 접으려고 했던 그 전화를 마침 받은 것이다. 그 전화 이후 우리는 계속 만났고 나는 그가 믿는 신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의 성경공부를 도왔다. 나에게 맞는 예배처로 인도했고 차에서 피아노 찬양을 들려줬다. 그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놀라운 일이 된 것이다. 믿는 남자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처음 보는 생명체가 점점 익숙한 생명체가 되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랬다.
엊그제 친정오빠가 우리 집에 와서 이틀을 머물고 갔다. 뉴질랜드에서 치과 치료를 위해 귀국했고 언니네서 머물다가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이틀을 머무는 동안, 나는 미리 신청한 ZOOM워크숍에 참여하느라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나의 익숙한 생명체에게 오빠를 맡기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TV소리와 오빠의 목소리에 순간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수제비 반죽을 해서 멸치육수에 고추장을 듬뿍 풀어 수제비를 같이 떼었던 기억이 났다. 다른 형제들보다 나와 가장 많이 닮은 오빠가 거실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몰랑해졌다. 친정집의 종교적 색채 때문이었는지 오빠는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 회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 오빠도 크리스천인 새언니와 결혼을 했다. 오빠는 자기 자신을 믿는 종교를 가지고 있어 그것이 새언니의 큰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오빠가 머무는 3일 동안 거실테이블 오빠의 맞은편 자리에 남편이 앉아 있었다. 낯 가리는 남편이 6년 만에 만난 오빠의 이야기에 웃으며 함께 했다. 왠지 모를 따뜻함이 몰려왔고 고마웠다. 남편이 된 신기한 생명체는 중년이 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었다. 자신의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고 혼자 사부작 사부작 하기를 좋아했다. 그런 남편이기에 노력해 준 것이 고마웠다. 부부라고 해서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고마웠다.
오빠가 좋아할 만할 메뉴를 내가 고르면 남편이 맛집을 검색했다. 하루는 간장게장을 하루는 평양냉면에 녹두부침이었다. 한국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많아졌다며 다양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언젠가 본듯한 남편의 얼굴과 표정을 오랜만에 보았다. 남편을 처음 만났던 그날의 후광이 오늘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그날의 신기한 생명체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오빠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크게 반박하지 않고 그냥 들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남편은 오빠의 이야기에 일부 공감하며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 모습이 마치 나에게 처음 전했던 그 모습과도 같았다. 아주 세심하게 오빠에게 전하는 그분의 이야기에 내가 더 감동이 되었다. 오빠는 듣기 싫어하는 듯 손을 만지작 거렸다.
나도 남편도 오빠도 모른다. 새언니가 그토록 바라는 오빠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언제일지. 사랑의 마음으로 오빠를 3일 동안 섬겨준 남편이 내 남편이어서 참 고마운 밤이다. 이 생명체가 내 남편이어서 참 고마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