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 마음의 기하학. @ 국립현대미술관.
누군가가 차려놓은 갖가지 마음들이 거대한 원목 식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 된다. 그리고 가지각색으로 기다린 그 마음들을 마주하고 누리면 된다. 식탁이라는 설정 때문이었을까? 날 위해 차려놓은 밥상을 마주한 것 마냥 내 마음이 따듯했고, 넓었지만 아늑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내가 마주한 작품의 마지막 인상이었다.
뭘까? 뭘까?
사실, 처음에는 궁금한 마음 투성이로 식탁에 다가갔다. 적당한 자리에 앉은 내 손에 나도 모르게 들려있던 서늘한 흙덩이. 가이드에 따라 동글동글 그 흙덩어리를 굴리고 만지기 시작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도 참여시켜 주는 작가 고마워. 근데 이거 뭐야?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뭘 느끼게 하고 싶은 거야? 어머, 이 식탁 진짜 원목 같은데? 돈 많이 들었겠네. 이 동글이 흙덩이들 내년까지 계속 쌓이면 어떻게 되는 거야? 에잇, 그냥 동그랗게 말고 별 모양으로 만들어버릴까? "
무지한 나는 의미를 찾아보려 애를 쓰며 나름, 작품에게 날카롭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내 손은 계속 그 흙덩이를 동그랗게, 동그랗게 더욱 동그랗게 만지고 있었다. 그 사이, 내 손안에 그 서늘함은 따듯해져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 마음도 따듯해졌다.
어린 시절 손바닥을 하얗게 만들며 피를 막았다가 한순간에 밀려오는 피의 움직임을 전기라고 표현하듯, 내 마음에 딱 그만큼의 조금 찌릿한 전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더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고 비뚤어진 잔가지가 많은 나의 마음이 떠올라 동그란 소망함을 품고 따듯한 흙덩이에 안간힘을 쓰며 동그랗게 빚었다. 물론 뒤돌아서면 바로 다시 혹이 날 내 마음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의 마음이 정말 모나지 않은 동그란 마음을 경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의 마음에 집중하며 내 흙덩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는데, 이게 웬걸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빚어놓고 간 각각의 동그란 마음들이 한데 모여있는 모습에 따듯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날 위해 차려진 듯, 고맙기까지 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귀엽지만 가볍지 않았던 버블의 소리를 들으며 한껏 그 마음을 누린 후, 비로소 내 손에 들려있던 작은 흙덩이도 내 마음의 모양대로 빚어져 그 식탁 위에 올려졌다.
16년 만에 돌아왔다는 작가 김수자
우리 엄마보다 한 살 더 어리신 그분이 가진 세월의 능력으로 품고자 했던 관람객들, 사회, 세상 등등등. 그분을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보따리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그분의 마음이겠지만 이번 전시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마지막 퇴장하는 문 옆에 있던 영상. 마치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찍은 것 같은 이 실시간 촬영 영상은 동그란 대형 식탁이란 별 위의 동글동글 마음을 가진 각자가 모여있는 아주 이상적인 행성같이 보여 또 한 번 "풉" 웃고, 따듯하게 퇴장...
작가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