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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Kim Apr 15. 2016

좋은 안녕.

오늘의 숙제.

나름 좋은 안녕을 했다.


내가 만들고 싶고, 기대했던 아름다운 이별은 아니였다. 퇴사 라는것이 원래가 아름다운 단어는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쿨함이 아름다움을 장식해 줄 수 있는 목적도 아니었기에 ... 눈물바람을 휘날렸지만 부끄럽지 않다.

나의 숙제에겐  진심담은 허그가 또다시 숙제가 되었지만 저 작은 공간은  등 뒤로 남겨두고 나는 뒤를 돌아 밖으로 걸어나왔다.

안녕! 나의 20대 중후반이여!



완벽하지 않았다.

매우 허술했고, 모자란 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마무리였지만, 최선을 다했던 나였기에 여전히 나의 못 남을 배우고, 또 배워갈 기회로 여기는 계기로 삼아 ,

이번 이별을 나는 나름 좋은 안녕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나에게 허락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 사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퇴사의 목적이 아니었다는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듯이.


자유의 실행을 위한 체크리스트.

마냥 늦잠에 빠져보자.

남편 아침을 정성스레 챙겨주자.

새벽반 중국어를 수강하자.

운전 연수를 5일 연속으로 받아보자.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자.

대청소를 하자.

그동안 밀린 만남을 추진하자.

방 구조를 바꾸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하루 종일을 내 좋아하는 책을 실컷 보면서 보내자.

대리석 식탁이 있는 카페에 혼자 가서 줄곧 책을 읽어 내려가 보자.

미니멀 리즘을 시작하자.


그리고 14일이 지났다.

난무했던 원대한 계획들 중  줄을 그은 몇 가지 항목을 정리하며, 그후의 나날들을 정리 해 본다.




하나. 남편 아침을 정성스레 챙겨주.

가장 뿌듯하고, 또 가장 기쁜 일은 저절로 완수가 되어진다.

아침을 차려놓고 내가 먼저 학원에 나가게 되는 날이면, 내가 차린 밥상을 사진으로 찍어서 감동의 메시지를 톡으로 보내주는 사랑스러운 그 사람 :)

일상의 일상에 의한 일상이 될 우리 아침밥상.

둘. 새 중국어반을 수강해 보자.

중국어 인생 어언 10년, 처음으로 드디어 한국에서 중국어 학원에 수강 신청을 했.

세명의 4,50대 중년 아재들과 나머지 세명의 2,30대 젊은 여성층으로 구성된 우리 반.

나름 초고수들로 Final Freetalking반이다.

하루 한 개씩 최근 이슈를 기사로 접하고, 그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한다.

다른 사람들, 특히 나와 다른 연령과 비슷한 연령의 의견들을 모두 들어볼 수 있어서

수업은 아주 흥미가 진진하다.


셋.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자.

사실 예전에도 봐 봤다. 그것도 하루종일.

중국 유학 시절 시험기간이 끝나고 약 2,3일가량 침대 위에서 과자만 먹고 그동안 밀린 한국 드라마를 연속으로 몰아봤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체크리스트에 올린 항목.

오랜만에 해 봤다. 뭐, 별게 없었다.

딍굴딍굴의 최고봉. 소파와 나는 한 몸.

이 바보상자를 내가 왜 이렇게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리모컨질. 

졸업 후, 몇 년 이후에도 녹슬지 않은 내 게으름의 실력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넷.방구조 바꾸기.

공부를 명분으로 대낮에 혼자 낑낑대며 작은방의 오전햇빛이 담기는 방향으로 책상을 옮겼다. 실로 좋았다. 아직까지 자주 그자리에 앉는것은 아니지만ㅋ 남편이 출근 한 후  오전 8시50분쯤 현재 배송대기중인 애크미컵에 드립커피 한잔을 내려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평소 눈팅만하며 나의 실현을 고대하던 인스타그램의 허세샷이 완성될 것을 상상하며 ㅋㅋㅋ 웃음이 난다.


다섯.그동안 밀린 만남을 추진하자.

가장 편하고, 보람된 사람들을 하나, 둘씩 만났다.


나의 자유를 함께 기다린 대학 친구.

함께 올림픽 공원에서 광합성을 하며, 학교 다닐 때처럼 햄버거에 맥주도 하고, 내가 창문도 안 열리는 커다란 건물 안에서 형광빛만 쏘이고 있는 동안 바깥세상에는 이런 햇빛도 있었구나 하며 그날의 순간순간을 마음껏 누렸다.

눈이시리게 푸른 하늘이 내 머리위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던 순간.

가장 위로해 주고 싶고, 가장 칭찬해 주고 싶고, 가장 많이 들어주고 싶은 애틋한 친구.

근 일년동안 많은 일들을 견뎌낸 자랑스런 내친구.

함께 울며 아팠던 우리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년전 그때처럼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만발한 벚꽃들이 야속하리만큼 아름다웠고, 또 시린 시간들을 밀어내고 다시 찾아온 봄날이 고맙기도 했다. 그동안 더 단단해진 내친구 마음위로 더 건강한 집이 자알 지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

우리동네 명물 삼익아파트 벚꽃축제.

가장 평범하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쇼핑도 하고, 맛있는 차와 여자들의 디저트도 즐겼다.

친구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나 또한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나의 첫 직장 상사이자 사장님, 사수였던 대리님.  언니들을 만나 초 맛있는 닭갈비도 얻어먹고, 요즘 핫 플레이스인 상수동의 멋진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낡은 공장건물을 이용한 분위기 갑 Anthracite상수.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그런 카페에 내가 입성 ㅋㅋㅋ

테라스에서 큰 목청으로 많이 웃기도 하고,  해가 내 얼굴을 비껴갈 때까지 언니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직은 내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역시나 나간 이별이었다.

이 이별을 위해 많은 준비를 고, 결국 도래한 그 날에 쿨하지 못했지만 나름 괜찮은 안녕을 보냈다고 하는 나. 그 이별에 마침표를  찍고도 그것을 아직까지 너무나 정성스럽게 말리고 있는 내가 남아있는 이별 그후, 14일.


내가 선택한 이별이지만, 정말 실현되어버린 이 이별을 받아들이기 까지 계속 문을 두드리는 여러종류의 두려운 마음들은  내 이별의 타당성을 위해 많은 설명들을 동반한다.

오늘 이렇게 혼자 있는 나는 또 그 이별을 추억하고 있다. 있다보면 침잠할 때도 간혹 있지만,내가 한 이별은 옳은 선택이었다는것을 내 스스로  다시금 확신할 수 있도록 오늘 주어주신 내 삶을 마음껏 누리고, 행복하게 살아내는것.


그것이 이별후 14일 지난

오늘 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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