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가족

가난한 아빠 가난한 아들

by 이준성공
우리 가족이 가난한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그 보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하는 마음은 이제 없다.

가끔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보통은 노는 데 사용)으로 평생을 대체로 건강하게 살 수 있었고 스무 살 이후로 용돈을 받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1원도 없기에 뭔가 금전적으로 빚을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네 식구가 살 때 가난했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택시를 운전하셨고 돈을 얼마나 버는지 잘 모르지만 항상 어머니에게 현금을 주셨고 어머니는 주섬주섬 돈을 챙겨서 주머니에 넣고는 했다.

나는 이 방식이 아주 잘못되어 있다고 보는 게 뭔가 어머니가 아버지께 돈을 받는 광경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일을 하다가 점심 먹고 은행에서 입금하거나 금고 같은 곳에 돈을 넣어서 그런 뭔가 손을 벌려 돈을 받고 돈을 주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보다는 술을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가계부를 쓰는 것보다 종교활동에 열심이었다.

이보다 더 가난해질 수 있는 조건이 있을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면에는 내가 생전에 얼굴을 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자라난 내가 공부를 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뭔가를 자꾸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부모님을 달달 볶았다.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고

XT 컴퓨터가 나왔을 때 그 당시 엄청난 고가의 컴퓨터를 사달라고 몇 달을 조르고 졸라서

결국에는 컴퓨터를 샀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버지가 30대 중반이었고 마음만 먹고 한 달 열심히 일하면 컴퓨터를 할 부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있었던 것 같다.

집 가난하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살면서 가장 감사한 일은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 주시고 걱정해주시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해보라고 응원해 주신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이 뭔가 배우고 뭔가 하겠다고 하면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런데 슬프게도 중학교 2학년 당시 허물어져가는 4평짜리 집 앞에 거대한 수도학원이 있었는데 반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그곳에 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매일 빽빽이 숙제를 하면서 공부 많이 한 놈을 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어머니 저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수도학원에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하다...돈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순간에 우리 집은 항상 돈이 없었다.

네 머리가 멍청하고 끈기가 없어서 공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을 때는 할 수 없었고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나는 공부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보다는 게임과 음악에 빠져 살게 되었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였다.

인생이 쉽게 망가지는 것 같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되는대로 살아야 망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니 내 인생의 출발선은 남들보다 훨씬 뒤처지고 캄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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