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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 미친놈이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by 이준성공
오락실에 미쳐 있다가 pc방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오락실이나 pc방이나 결국 트렌드만 변화한 거지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게임이라는 것을 빼고 이야기하기에는

내 인생에서 게임을 소비한 시간이 너무나도 많다.


게임을 좋아하는 걸 뛰어넘어 사랑하는 존재 집착하는 존재가 아닐까?

오락실은 더 이상 나와 친구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지 못했어

PC 통신이 나오고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초고속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카페들이 생겨났어

그리고 사람들이 그 카페에서 인터넷을 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같은 게임을 하기 시작했어

20170802083843486_N156CY6C.jpg 스타크래프트

여기서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가 내 인생을 송두리씩 바꿔 놨지

고등학생때 공부를 잘하지 못하지만 공부를 아주 못 하지도 않았어

그 이때 반에서 3등 정도 했으니까 나쁘지 않았던 성적이었던 거 같아

근데 내가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하면서

시험 성적이 망가지기 시작했어

20210616142059453rbws.jpg 리니지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보다 스타크래프트 전략 세우는게 너무너무 즐거웠어

야간 자율학습을 반드시 해야 했는데, 나는 연습장에 리버드롭에 대해서 연구하고

시즈 탱크와 다크 템플러들을 상상하면서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보냈어


당시에 PC 방은 1시간에 1,000원 정도였는데 비싼 곳은 1,500원도 했어

학생이 부담하기에는 꽤 큰 손이었지 그래서 pc방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하루에 길면 한두 시간 정도 다녔던 거 같아


지금이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사장님이 시간을 보고 대충 시간이 넘어가면

게임을 마무리하고 끄라고 얘기하는 시스템이었어 뭔가 정감 어리면서도 되게 낙후된 시스템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래서 사장님이 인심 좋고 예쁜 누나가 알바로 있는 PC방을 자주 갔었던 거 같아


아직도 기억나는게 면목동 중화중학교 앞에 PC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누나가 진짜 예뻤어 친구들과 함께 퀘이크를 하면서

서로 그 누나한테 관심 받으려고 경쟁했던게 아직도 기억나


피시방은 워낙 자주 다니기도 하고 워낙 많은 곳을 다니기도 해서

각 장소마다 추억이 남아 있는데

그래도 내가 일했던 리얼클릭 PC방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거 같아

어릴 때는 슈퍼마켓이나 오락실 사장이 되는게 꿈이었는데

PC방이 생기고 나서부터 PC방 사장이 되는게 꿈이되었어


PC방에서는 담배도 피울 수 있고

맛있는 컵라면과 커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게임 하다가 피곤하면 편안한 PC방 의자에서 잠도 잘 수 있었다고!!

나에겐 천국 같은 곳이었지


다른 고등학생들이 학교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

PC방을 다니고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했던 거 같아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그때 게임 하고 즐겁게 안 놀았으면

아마 지금 놀겠다고 지랄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고등학생 때 저지른 최악의 짓은

새벽 1시까지 PC 방에서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식스 게임을 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한테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라면 끓여 달라고

구라를 쳤어

엄마 미안해요


인간은 놀아야 하는 총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10대 때 다 땡겨서 쓴게 아닐까?

미리 놀아 재낀 덕분에 30대부터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누구보다 빡세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10대 20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일을 한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거든


만약 10대 때 이렇게 살았다면(가정)

인서울은 아니더라도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4년제 대학 다녔으면 나는 지금이 자리 없을 것 같아...


오히려 애매한 재능을 빠르게 포기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던게 잘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내 인생에서 가장 분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옆 반에 친구들한테

5드론 저글링 러쉬를 당하고 스타크래프트에서 허무하게 패배했을 때야

저글링 러쉬라는 거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

맵에 총 여덟 명이 있는데 각자 저글링을 빨리 뽑아서

한 명을 멸망시킨다는 컨셉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뭔가 망치로 쳐 맞고 세상에 열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

img.png

아...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각자가 가진 센스가 있고 재능이 다르구나

게임조차도 이렇게 재능의 영역이 중요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인생은 결국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빨리 깨달은 사람이 성공하고

늦게 깨달은 사람이 늦게 성공하는 게임 같은 것이 아닐까


잘하는게 뭔지 빨리 깨닫지 못 했지만

못 하는게 뭔지는 빨리 깨달았던 거 같아

하지만 못 하는 것에 매달려서 고통 받거나 좌절하지 않았던게

인생을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거 같아


대신 맡은 일에는 잘하든 못 하든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

"그 결과가 좋던 나쁘던" 말야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그런 개념이라기보다는

그냥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느냐 후회가 없느냐라는 개념으로 시도했던 거 같아


대입에 실패하고 기왕 망한 거 하고 싶은 거를 해 보고 싶었어

멀티미디어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고

홈페이지 만드는 법,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다루는 법을 배웠어

그때 배운게 지금까지도 유용한 걸 보면

세상에 어떤 배움이든 헛된 건 없구나


이 나이에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와 포토샵 일러스트

이런 것들을 손쉽게 다루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화면 캡처 2025-02-25 071054.png

당시에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라서 그런지 성적도 무척 좋았어

거의 대부분의 종목이 A+였고 군대 가기 전까지

학교에서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우수한 학생 중에 하나였던 거 같아

이럴 거면 차라리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걸...


성격이 그냥 싫으면 아예 안 하게 되는 성격이 이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

1년 정도 멀티미디어 학과를 다니고 군대를 가야 하는 타이밍이 되어서

학교를 다니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해 보기로 했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할까 고민도 하지 않고 PC방에만 이력서를 넣었어

표정이나 말투가 성실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나를 채용해 주셨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 PC방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을 했어


예를 들면 1차로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먼지를 모두 제거한 후에 걸레질을 했어

걸레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빨아야지 깨끗해질 수 있거든

이어서 주문한 과자를 예쁘게 진열했어

사람들이 먹고 싶도록 좋은 위치에 진열해 놨지


지금은 레이저 마우스가 일반적인데

그 당시에는 마우스 안에 볼 같은 것이 하나 들어 있었어

볼이 굴러가면서 좌우 위아래로 마우스가 움직이는 방식이었거든

마우스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은 안쪽에 휠 부분에 먼지가 꼈어

먼지가 너무 심해지면 마우스 볼이 잘 굴러가지 않았거든

그래서 주기적으로 마우스 아래쪽에 있는 커버를 분리해서

휠 부분을 닦아 줘야 했어


보이던 보이지 않던 마우스 닦는 일을 열심히 했어

리얼클릭 PC방이 나의 PC방이라고 생각했어

사장님이 회사 다니다 처음으로 PC방을 오픈해서 그런지

사장님도 열심히 일을 했어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PC방 사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었어

PC방 관련된 에피소드는 좀 더 있어서 다음화에 계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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