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월급을 받고 일한 곳은 PC방
PC방에 대한 내 사랑은 30대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집 근처에 피시방이 없기도 하고
PC방을 걸어가는 시간도 아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게임을 하긴 하지만 집 근처에 PC방이 있다면
나는 돈을 주고라도 PC방 갔을 거야
마음 편하게 게임 하는게 가장 중요하거든
집에서는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스무살로 돌아가 PC방 손님들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 봤어
하루 종일 PC방에 처박혀서 살고 있는 동네 아저씨를 봤을 때
아저씨라고 했지만 사실상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백수들이었다고 보면 될 거 같아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처럼 살다가는 PC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하고 내가 별반 다르지가 않았어
아침에 PC방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친구들하고 PC방에서 게임하고
자는 시간 빼고는 그냥 PC방이 계속 있었던 거 같아
20살에 담배도 피웠겠다 친구들하고 게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고 다시 PC방에 와서 게임하고
새벽 1시에 들어가고 8시에 출근하고 우리 모임 이름이 폐인클럽이었던 것을 보면
폐인들이 맞는듯
참고로 PC 방은 휴일이 없어서 주 7일 출근이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한 달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쉬게 해 주던가 기억이 잘 안 나네
거의 방에서 먹고 자고 피시방에서 또 좋았던 점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었던 거였는데
내 돈으로 사 먹는 거지만 PC방 손님 중에 미식가들이 많아서
참 이런 부분에 꼼꼼하고 디테일해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서 주문하는데
짜장면, 볶음밥, 오므라이스, 된장찌개, 김치찌개까지 그 날 기분에 따라
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주문해서 먹었던 것 같아
단골 손님들하고 식사할 때는 테이블을 깔고 같이 식사를 하곤 했어
저녁 시간에는 바빠서 그렇게 못 했는데
점심시간이나 낮에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것도 나름 즐거웠던 거 같아
되게 특이한 형님이 한 분 있었는데 그 형님 이름은 그랑형님이었어
리니지에 나오는 서버 이름 중에 그랑카인이라는 서버가 있었어
그랑카인 서버에서 8레이(+8이 강화된 레이피어 무기)를 들고 사냥하던
요정 캐릭을 키우는 형님이었는데
LG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시는 분이었어
그는 한손에 팜 PDA를 들고 펜으로 조작하여 AS접수하였고
AS를 마치면 바로 PC방으로 돌아와 리니지를 해
그리고 AS가 접수되면 또 일을 하러가
하루 종일 AS 갔다 PC방 왔다 AS 갔다 PC방 왔다 이걸 반복하더라고
이것도 참 신기했었어
라그나로크만 하는 형님도 있었어 이름이 숫자 형님이었는데
그 형님은 라그나로크와 뮤를 밤새도록 하시더라고
가끔 나랑 포트리스를 함께 했었던 기억이 나
마지막으로 닉네임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면목동에서 상당히 목 좋은 자리에서 편의점을 하는 아주머니의 아들이었어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해 보이고 그랬던 형님인데
취업이 잘 안 됐었던 것 같아
면접을 보고 왔는지 정장을 입고 PC방에 오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었는데 우연히 그 편의점에 일하시는 어머님 얼굴을 보고 느꼈어
부모님이 너무 세고 강하면
아들이 오히려 잘 안 풀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뭔가 주눅들었던 표정이 항상 부모님한테 무시당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
반대로 나는 부모님께서 항상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집안의 기둥이라고 말씀해 주셨던게 생각이 나
위에 언급한 세 명 외에도 PC방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 분들을 다 지금은 어떻게 살까 가끔 궁금하기도 해
돌이켜보면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어떻게든 시간 내서 하려고 했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하고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2001년 1월부터 군대를 가기 한 달 전인 2001년 7월까지
약 7개월간 PC방 아르바이트가 내 인생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
나름대로 일을 잘 한다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하면서
내가 사람을 상대하고 대응하는 일을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군대를 가지 않았다면 아르바이트를 1년이고 2년이고 했을 것 같아
그만큼 즐거우고 재밌었거든
이후에 아쉽게 군대를 가게 되었지만
군대에서는 가끔씩 휴가를 나오거나 외박을 나오게 되는데
4박 5일 휴가 나오면 3박 4일 동안 리니지만 했어
외박을 나오면 군부대 근처에 있는 PC방에 가서 리니지만 했어
그때 유행하던 노래가 윤민수의 그룹으로 유명한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노래였는데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지금도 가사를 주기 외울 정도야
2년 2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는데
무슨 아르바이트를 할까 크게 고민 안 했어
전에 일하던 사장님을 찾아갔는데 리얼클릭 PC방 사장님은
리얼클릭 PC방을 다른 분에게 팔고 PC방 컨설팅 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
이 사장님이 똑똑하다고 느낀게 PC방을 운영을 하면 돈은 벌지만
관리할 것들이 너무 많고 특히 MBTI가 I성향인 사장님은
PC방에서 일하는게 힘들었을 것 같다.
PC방을 개업하고 운영하는 노하우도 쌓였고
네트워크나 게임 서비스 같은 것들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체득했으니
굳이 PC방을 직접 운영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그래서 아는 선배님과 함께 PC방을 오픈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
(지금으로 따지만 핫한 아이템으로 창업하고 셋팅 후 다른사람에게 사업권을 넘기는 사업이지)
그 사장님은 PC방을 넘기고 PC방 컨설팅 일을 시작했어
본인을 어필하는게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을 매니저로 쓰면
"돈을 벌게 해 주겠다. 대신 나한테 이만큼의 보상을 줘라"라고 제안을 했대
왠지 멋있었어 나도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내 몸값을 스스로 제한하고 내 가치를 증명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물론 지금처럼 구체적인 생각이 아니었지만
그 형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다양한 PC방에 나를 파견하셨어
의도가 있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에는 서일대학교 앞에 있는 PC방에서 몇 달을 일했어
함께 일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일을 참 잘하더라고
약간 경쟁심 비슷한 감정이 들어서 놀라웠어
공부할 때는 전혀 이런 감정이 없었는데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할 때도 이런 감정이 들지 않았어
같은 일을 하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묘한 질투심 같은 것도 느껴지고
내가 더 잘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사실 그 친구는 그 매장에서 2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어서
당연히 나보다 잘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나 스스로를 조금 과대평가했었던 시기였던 거 같아 23살이기도 했고
무엇을 해 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먼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미래는 너무 암울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