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by 아리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자동으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됐다.

20살 때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고, 남편이랑 7년 전에 싸웠던 이유로 아직도 싸우고, 엄마에게 욱하는 성질은 아직 남아서 항상 후회가 된다.


나에 대한 고민도 상대에 대한 생각도 많은 타입이라, 고민을 하고 시간을 보내면 언젠가는 조금 성숙한 내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랑 한바탕 싸워보고 알았다.

'아~ 사람 진짜 안 변하는구나'


육십이 넘어 칠순을 향해가는 엄마가 내게 조금 서운한 말을 했기로 소니...

거기서 눈물을 펑펑 쏟을 일이냐? (하물며 명절!)

눈물을 쏟는 것도 괜찮지만 욱하면서 화를 낼 일이냐?

화를 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울 엄마는 항상 저래 이제는 엄마한테 진짜 잘해주지 않을 거야'라고 작정할 일이냐?


내가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런 마음의 변화를 누가 44살 반백에 가까운 중년의 맘이라고 누가 상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유치한가?

유치하고 창피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 하겠다. 이런 내가 고민이라고 내 입으로는 절대 말 못 한다.

나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걸까?ㅠㅠ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나를 좀 예쁘게 가다듬어 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흘러가는 시간만으로, 잘해야지 하는 생각만으로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글을 써보면 가능할까?

글을 쓰면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정리해 나가고, 사람들을 조금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 성숙해질 수 있을까?


에세이 같은걸 읽어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매력적일까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을 보듬을 줄 알고, 인맥도 풍부하고, 화를 내더라도 굉장히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작가 정주영 님의 글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 십 년 만에 친구들이 모두 만났는데

니는 아직도 그거 하고 있나

내가 걷는 길을 묻다가

시선을 거두는 친구들이 있었고

반대로 이번에는 어떤 걸 준비하니

내가 걷는 길을 정말로 응원한다는

친구들의 온도차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불편해서 애초에 먼저 나오려던 자린데

불편했던 친구는 나도 시선을 거두고

이해해준 친구로 시선을 옮기면 되더라. "

.... 중략...(작가 정주영 님의 글 중에서..)


친구들 중에는 당연한 거지만 나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럴 때 나를 이해시키려고 바둥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를 이해 못하는 친구를 비난하지도 않고,

'아, 동창회 지겨워~왜 내가 거기 나가서 이리저리 맞춰야 돼?'라는 단절도 아닌

딱 저 정도로 맘이 정리가 되면 나의 세상은 좀 더 풍요롭고, 고요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글을 쓰는데 시간을 들이고, 스스로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서 결론을 내다보면 아마 변할 것이다. 그렇다! 도저히 변하지 않는 못된 감정들은 깔끔하게 포장해서 저 위장 뒤쪽에 쌓아두고, 좋은 것들은 조금 더 세련되게 정리해서 금방 꺼내 쓸 수 있는 내 머릿속 캐비닛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브런치는 나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속마음.

그리고 스스로 위로받고, 정리해 나가보려고 한다.

이곳에 글을 쓰면서 조금 변할 수 있다면 아마 나의 노년은 내 청년시절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브런치가 날 더 이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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