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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간호사101

간호사, 솔직히 전 반대입니다.

4학년? 아직 안늦었어. 도망쳐.

by 오월씨

요즘 스레드에서 여러 글을 쓰고 있는데

그 중 간호사 글이 정말 조회수가 높았습니다.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간호사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세상에 간호사가 정말 많다는 소리기도 하겠지요.


10년차 간호사로 달려오면서

아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좀만 더 일찍 해주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했던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10년차 간호사로 일하다가

공공기관으로 이직해서 2년차 연구원 때 퇴사하고

지금은 일단 쉬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의사, 어머니가 간호사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은 후 그만두셨으니 한 2~3년 정도 일하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다양한 일에 대해 접할 기회라고는

드라마나 영화 정도가 고작이고,

아무래도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부할 땐 공부만 열심히 하느라 진로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었고요.

저의 바보같은 모습이 1차적으로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뭐 먹고 살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었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런 배경에서 저는 자연스레 간호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공부도 못하진 않았어요(?)

하위 의대는 좀 간당간당했지만, 상위 간호학과가 가능해서

일단 서울로 가고 싶어 가게 되었죠.)


학교에서도 여전히 대학생활을 즐기느라

혹은 수많은 실습과 과제에 허덕이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아니, 어쩌면 생각을 외면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저는 간호사가 됩니다.

항상 힘들기만 했으면 차라리 빠르게 탈출이라도 했을텐데

어느 날은 힘들다가도 어느 날은 또 할만하다가

또 어느 날은 금융치료 받고

이러다보니 10년차까지 병원에 있었습니다.


병원을 나오고 나서야 정말 진지하고 늦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길이 정말로 나의 길이었을까?

10년을 직장 생활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회사나 다 장단점이 있는데,

그럼 간호사는?


결론은,

저는 간호사를 반대합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지금과 같은 처우라면 반대합니다.




우선 좋은 점으로는

1. 환자를 돌보며 느끼는 보람이 있어요.

이게 제가 10년차까지 이 일을 버티게 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마취과 간호사라 환자들은 저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더 많지만,

그 순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2. 어쨌든 면허증이 있기 때문에 취업을 할 수 있다.

처우를 보지 않고 어디에서든 일만 하면 된다!라면

취업을 할 수 있다고들 하더라고요.

이 부분은 제가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보통 경력단절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생기던데

그러면 육아로 인해 상근직을 원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리는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합니다.

제 미래일수도 있겠죠?


3. 음….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통용되는 이유말고, 제가 근무했던 곳에서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같이 일하는 분들이 다 너무 좋았다는 것과

그래도 나름 큰 병원에서 일해서 처우가 괜찮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제가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었네요.




그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1. 간호사들의 처우입니다.

간호학과가 몇 년 사이에 대거 증원되면서

지금은 병원들이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메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큰 병원만 나가도 교대근무에 월급은 쥐꼬리,

사무직과 다르게 하루에 근무해야 하는 필수 인원이 있다보니

아파도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없고,

원하는 휴가도 몇 주에서 몇 달 전에 신청해야 합니다.

병원 복지 차원에서 휴가가 많아도 다 써 본적이 없어요.

왜냐고요? 휴가가 맨날 짤리거든요.

병원도 사실 중소기업이나 다름없어요.

인력 집약적인 회사이고,

간호사 한 명 더 쓰는데 병원에선 1년에 3천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니

인력 충원에 인색해질 수 밖에 없죠.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2. 성장의 한계입니다.

1번과 비슷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간호사는 경력이 생겼다, 내 실력이 생겼다를 증명할 길이 없어요.

쉽게 말해서 주사를 더 잘 놓는다? 안전 보고를 더 많이 했다?

제 실력을 뭘로 증명할거죠?

일반적인 다른 직종은 이직하면서 급여도 더 올려받을 수 있는데,

1번과 또 이러한 이유로 이직을 한다고 급여가 올라가진 않습니다.

좋은 병원에서 경력직도 잘 뽑지 않죠.

좋은 회사일수록 더 좋은 인재를 뽑아야 하는데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안 좋은 이유는 좋은 대학을 못갔다고, 성적을 잘 못 받았다고

처음에 좋은 병원을 가지 못하면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간호학과가 많으면 뭐해요, 요새 취업도 어렵다는데,

다른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저는 그래서 간호학과… 말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 늦둥이 동생도 지금 간호학과 4학년이네요.

4학년도 안늦었다고 다른 길도 고민해보라고 하고 있긴 한데,

저도 못했던 것을 누굴 시키나 싶기도 합니다.

대신 간호사의 다른 길에 대해서도 알려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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