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너무 신기한 아이

4. 첫 만남

by 무원

내 20대 초반의 연애는, 지금 돌이켜봐도 참 어설펐고 최악이었다.


분명 ‘연애’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 흔한 고백조차 없었다.

몇 번 만나며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정도면 사귀는 거 아닌가?’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혼자 마음을 굳히고는, 페이스북 상태창에 당당히 “연애 중”이라고 걸어버렸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상하게 이런 부분에서는 경상도 남자처럼 무뚝뚝했다.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태도, 표현에 인색한 습관.

그게 연애의 시작부터 이미 삐걱거림을 만든 줄은 그땐 몰랐다.


문제는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찾아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해 둔 호주 배낭여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짜리도 아니고, 무려 한 달짜리 장기 여행.

비행기표며 숙소며 일정까지 다 예약해 둔 상태라, 이제 와서 연애를 핑계로 취소할 수는 없었다.


“그게 뭐가 문제야? 다녀와서 다시 만나면 되지.”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반응은 달랐다.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어떤 친구는 노골적으로 욕까지 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호주에 도착한 나는 여행의 자유로움에 흠뻑 빠져버렸다.

새로운 풍경, 자유로운 공기, 하루하루가 모험 같았다.

심지어 유심조차 사지 않고 떠났으니,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와의 연락은 사실상 끊겨 있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상대 입장에서는, 두 달 동안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거기서 더 무심한 말을 내뱉었다.

“나 딱 2년만 워킹홀리데이 다녀와도 기다려줄 수 있어?”


당연히 실제로 가지도 않았고, 설령 갔다 한들 성격상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땐 머릿속 필터 없이 떠오르는 대로 말을 뱉는 버릇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참 철없고, 배려라곤 없던 시절이었다.


여행을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고민하다가,

오래된 작은 공방에 들러 반지를 직접 만들었다.

투박하지만 손길이 담긴 반지.

사이즈도, 취향도 모른 채 만든 거지만 진심을 담았다.


옆에서 친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리기도 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반지는 아니지 않아?"

이 작은 반지가 우리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주길 바라며,

돌아가면 꼭 건네주리라 다짐하고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곧장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심통 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자친구가 반지를 꺼내 보이자,

놀람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미묘한 행복이 뒤섞인 얼굴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가끔 아내는 그때 일을 꺼내며 농담처럼 말한다.

"나도 여자긴 여자였나 봐 그 반지에 코가 꿰인 거 같아."

우리는 그 말을 웃으며 지나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반지가 우리 관계를 간신히 붙잡아준, 아주 중요한 매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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