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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l 22. 2023

방구석에서 소개팅 어플 켠 여자

Match!

내 남자친구는 '어플남'이다.

그 말인 즉 나는 '어플녀'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데이팅 어플에서 만났다.


데이팅 어플의 이미지는 '원나잇' 정도로 굳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만나 3년 넘게 잘 만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운 좋게도 그게 나다. (데이팅 어플의 성비를 보면 내 남자친구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번의 연애를 해봤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해달라고 하기도 싫었다. 어플에서 만나는 운명적인 사랑이나 연애 자체에 대한 환상이 있을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는 심심했다.


무의미하게 사진을 구경하고 있을 때 지금 남자친구의 사진을 봤다. 어두운 곳에서 찍어서 흔들린, 눈도 뜨다 만 이상한 사진이었다. 지금 봐도 어이가 없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올릴 생각을 했지? 난 어떻게 이런 사진에 좋아요 누를 생각을 했지? 근데 그냥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좋아요를 눌렀다. 홍대병 말기가 여기서 도졌는지 아무 사진이나 올려놓고, 아무런 글도 적지 않은 그 모습이 색달라서 좋았던 것도 같다.


Match!


그 사람도 내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는 매칭이 됐다.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카카오톡을 알려줬다. 그리고 좀 대화를 하더니 그는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카톡을 '읽씹' 후 차단하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나는 통화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지금도 남자친구와의 통화 말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근데 카톡으로 몇 마디 해보고 통화를 하고 싶다고? '내가 당신이랑 왜요?'라는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어지간히 통화를 좋아하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거절을 잘 못했던 그때의 나는 그냥 알았다고 해버렸다. 그 와중에 찝찝해서 전화번호는 알려주기 싫어 보이스톡을 했더랬다.


근데 이게 웬 걸. 그와의 첫 통화는 예상외로 재밌었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그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익선동에 다녀왔다고 했다. 사투리가 이렇게 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신기했고, 본 적도 없는 나와 대화를 잘하는 것이 신기했다.

'꼭 내가 아니라 누구를 처음 만나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겠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대화가 잘 통한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통화를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어떤 날은 그 사람 회사 이야기를 들었다. 또 어떤 날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허쉬초콜릿을 처음 먹어봤으며, 그 맛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그와의 대화 내내 난 늘 깔깔거리며 웃었다.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점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고, 기다리게 되었다. 영화 <접속>의 전도연과 한석규처럼 메시지와 통화만으로 본 적 없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사람이랑 있으면 재미있을 것은 확실했다.


하루는 새벽 4시까지 통화를 한 적도 있다. 나야 백수였지만 그는 직장인이었는데 어떻게 새벽 4시까지 통화를 하고 다음날 출근을 했는지.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할 텐데.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궁금했고, 알고 싶었고, 연결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는 재미도 컸다. 적어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내 환상이 깨질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만남이 금방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래 메시지와 통화만 하던 우리는 드디어 강남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이 '그냥' 좋았던 내 '촉'이 맞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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