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 Jul 25. 2018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에세이를 만난다는 것

내가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느낀 순간은 너무 재미있어서 페이지를 미친 듯이 넘길 때도, 감명 깊은 구절에 밑줄을 칠 때도 아니다. 나와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거나 혼자서만 생각으로 이런저런 엉뚱한 경로를 만들어 놓은 게 여기 활자로도 적혀 있을 때다. 그런 구절을 보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속으로는 "맞아!"라면서 박수를 치며 공감한다. 


이 세상 인구가 대체 몇 명이던가. 그 작가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닐 것이다. 책이 잘 팔리는 것도 그만큼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쓰인 에세이를 읽을 때면 영혼이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든다. 


'영혼의 주파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좀 통하는 것 같다고 해서 쉽게 내어주는 표현이 아니다. 은근히 세심한(이라고 쓰고 까탈스럽다고 읽는) 성격을 지닌 내가 이 말을 꺼낸다는 건 "말도 안 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고?"와 같은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때, 그것이 심지어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내 성격과 부합하는 언어들로 쓰여 있을 때 격한 반가움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나만의 생각일 수도. 허허)


이렇게 험난한 기준들을 거쳐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에세이를 만날 때면 마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맥도 좁고 친구들과 약속을 자주 갖는 편이 아니다. 이런 성격을 형성한 건 나인데, 그럼에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가 바로 에세이다. 나와 맞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읽으며 공감하고 파고드는 일은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다. 


무릎을 탁 칠만 한 멋진 표현이 없어도, 독서 노트에 기록할 만한 구절이 딱히 없어도 괜찮다. 결이 맞는 친구와 떠는 수다는 생각의 환기와 분수를 만드는 좋은 원동력이 된다.



/2018.7.14 SAT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 아르바이트가 알려준 나의 리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