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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진단을 받았다

내 생애 가장 뜨거웠던 올여름

by 마요


내 생애 가장 뜨거웠던 올여름.

‘폐경진단’을 받았다.

내 나이 45.

난소의 기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반도가 펄펄 끌어 내 몸도 뜨겁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갱년기 증상 중 하나가 뜻밖의 뜨거웠던 계절과 만나, 두리뭉실 퉁 치고 있던 거였다.


검사 결과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일주일 전, 검사를 하기에 앞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의사가 운을 떼었기 때문.

병원을 방문하게 된 건, 보름이 지나도 생리를 하지 않았던 게 시작이었다.

살면서 난생처음 있던 일이었다.

생리 날짜가 앞뒤로 일주일 가량 늦어지거나 빨라진 적은 있어도, 생리를 건너뛴 적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그 당시 ‘임신’인 줄만 알았다. 얼마나 웃긴 상황이었을까.

폐경 진단에, 임신테스트기로 혹여나 모를 ‘막둥이’까지 염두에 두었으니. 뒤통수가 얼얼해져온다.


첫 생리를 했던 건 중2였다.

반에서 키가 큰 편에 속했던 나는 친구들보다 생리가 늦었다. 처음 생리를 했을 때의 당혹감.

이걸 반평생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충격이었다. 불편함과 찝찝함으로 한 달에 한 번은 늘 이런 시기를 보내야 한다니.


폐경진단을 받은 날, 다시는 자연적 생리가 생기지 않을 거란 생각에 또다시 당혹스럽고 두려웠다.

이젠 여자로서의 기능은 상실된 건가. 하늘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내 얼굴이 울상이 되어버렸는지, 의사는 그제야 나를 위로했다. 폐경이란 이벤트에 너무 집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본인이 폐경진단을 한 가장 젊은 사람은 2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비슷한 환자들이 찾아오고, 그 연령이 평균이라 칭하는 50대 초중반으로부터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내 나이가 45세이기 때문에 평균의 잣대에 비하자면 빠르긴 하지만, 요즘 그 평균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폐경과 갱년기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인생의 과정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한번도 그 날이 오늘일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고 슬프다.


폐경이 되면 가장 주목해야 할 일은 ‘노화’다. 그야말로 급격한 ‘노화’다.

표면적으로 얼굴에서도 드러나겠지만, 몸속에서 노화가 진행되고, 그 발현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연초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골밀도’가 낮았던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났고, 이유도 없이 허리둘레에 살이 찌고 몸무게가 갑자기 3-4킬로가 찐 연유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무리 빼려고 해도, 쉽게 빠지지 않았던 건, 내 몸속에서 이미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


무엇보다, 나는 더욱 예민해졌고 감정 변화가 요동쳤다.

아무리 ‘폐경진단’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걸 부인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나던 수준이 분노로 바뀌었음을 내 자신이 극명하게 느끼고 있으니.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포인트를 간신히 참고 있다. 감정의 변화가 확실히 시작된 걸 보면, 호르몬이 고장 난 게 분명하다.

별거 아닌 일에 느끼는 섭섭함.

기억도 나지 않았던 옛 일이 어느새 헤집고 나와 내 맘을 후비고 있었던 여러 날들의 밤.

’ 난, 아무것도 된 게 없잖아 ‘ 술을 마시고 펑펑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던 주말 술자리.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을 만큼 외롭고 힘들었다.


아직은 갱년기 증상이라 할 만한 것들이 심각하게 드러나기 전이라, 더 심해지면 호르몬 치료를 하기로 했다.

당장은, 생리 유도 주사를 맞고 생리를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병원에 다녀온 후, 며칠은 서러운 감정에 방황했다.

그 감정이 때로는 남편을 향해 날 선 말들을 쏟아냈고,

때로는 아이들을 향해 비수를 던졌다. 그러면 안 됨을 아는데, 내 감정도 고장 나서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정말 정말 힘들다.


극복해보고 싶다.

내 폭주하는 감정도 붙잡고 싶고, 분노가 치솟는 상황도 거둬내고 싶다.

노화가 빨리 된다는 내 몸도 하나씩 하나씩 기름칠하고 재 정비해보고 싶다.

하루 종일 누워 있으라고 하면 누워서 꼼짝도 안 할 만큼 무기력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보고 싶다.


1. 필라테스 등록해서 운동치료받기

2. 근력 운동하기

3. 술 안 마시기

4. 커피 안 마시기

5. 내 감정과 상황을 기록하며 반성하고 고치고, 온화한 마음 유지시키기에 힘쓰기


극복하고 싶다.

주어진 내 삶을 가치 있게 쓰고 싶다.

우울함의 동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밖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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