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알을 삼키듯 자책하는 나의 하루
갱년기 증상의 첫 신호탄.
나에게는 "고장 난 감정'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부쩍 예민하게 다가왔다.
원래 내 성격이 예민하기도 하지만, 이 예민함이 갱년기와 만나자 훨훨 타올랐다.
이쯤 되니 가족들에게 너무 많이 미안하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가족들에게 갑자기 분노로 풀어버릴 때도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으며 나는 그렇고 고통스럽게 후회하고 있었다.
흡사 미친 아내, 미친 엄마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날들이다.
나는 원래 예민한 성격이다.
'저 예민한 성격이에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겉으로만 보면 늘 씩씩하고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라 나의 예민함에 수긍하지 않았다.
나는 그 예민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외향적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감정이 뒤섞인 사람들과 너무 많이 만난 어떤 날은 나 자신이 혹사당한 것처럼 힘들었다.
완전히 방전되어, 집에선 말 한마디도 주고받기 싫어졌다. (결혼 전)
1%도 충전되어 있지 않은 완전한 방전 상태.
나는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서서히 서서히.. 혼자 채워가고 있었다.
갱년기 진단을 받은 후, 나는 그걸 컨트롤하는 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했다.
채워질 수 없으니, 늘 방전상태로 멍하게 하루를 살게 되고,
그 하루에 자극을 주는 불편함이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은 '분노'.
영문도 모르고 화를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과 남편.
자책하는 밤엔 유리알을 목구멍으로 삼켜내듯 아프고 또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나 자신과, 아픈 말을 삼키는 가족들 사이에서
낯설고 불편한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런 감정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내 안에 침투한 걸까.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는 나는 하루하루가 그저 낯설고 불편하다.
폐경 판정을 내던 의사는, 아직까지는 호르몬 치료가 필요 없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만큼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가지 검사와 후유증도 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지만, 갱년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인 '분노 표출, 감정이 조절 안 되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정신과보다는 호르몬 조절을 하는 약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참 슬프다.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는 그 기관까지 고장 나서 내 기분이 미쳐 날뛰고 있다니.
내 감정은 확실히 고장 났다.
내 딸아이의 나이가 되던 오래전 내 시절을 떠올려본다.
유난히 짜증이 많았던 울 엄마. 즐거워 보이지 않는 엄마의 상황들, 늘 불편한 눈빛.
그 시절 시부모까지 봉양하며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는 젊은 엄마의 상황이 얼마나 녹록지 않았을까.
그 불편하고 힘든 감정을 누구와 나누며 버텨왔을까.
나의 갱년기를 마주하며, 지금은 칠십이 훌쩍 넘은 엄마의 오래전 그날들을 낯선 사진 마주하듯 꺼내본다.
엄마에게 참 미안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엄마가 떠올라 눈물이 차오른다.
별 것 아닌 일에 왜 나는 이토록 슬프거나 화가 날까.
감정 스위치여.
제발 함부로 나대지 말아 주라.
내 옆을 지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 내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 미안하다.이것만은 막아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