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여자들을 다시 바라보다
남편은 금요일에 되어서야 집에 온다.
사흘은 직장이 있는 곳에서 지내고, 금요일엔 집으로 돌아온다.
월요일 아침에 회사 버스를 타고 또다시 출근.
남편이 집에 오는 금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가 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두 아이들을 온전히 케어하던 일을 반으로 덜어낼 수 있고,
주방에서 벗어나 단 둘이 맛집을 찾아가는 일은 내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나는 솔로 재방송을 함께 보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몰아보는 재미도 남편과 함께 하는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
우리 나이대 (40대 중반) 부부가 뭐 그렇게 좋을 일이 있겠느냐마는,
나의 남편은 나에게 늘 '좋을 일'이다.
지난주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함께 들어가서 듣고 싶다고 하는 걸, 대기실에 있으라고 하고 나만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이 모든 상황이 수치스러웠다. 주눅이 들었다.
정말 '폐경'이라고 진단을 하면 , 남편에게 미안할 것 같기도 하고.
남편과 병원까지 같이 갔건만, 왜 그런 감정이 툭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혼자 진료실에 들어가서 꽤 오랜 시간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왔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남편에게 잠시만 설명할 수 있는 '정리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덤덤히, 의사가 나에게 전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 순간, 내 옆에 남편이 있어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말도 잘 들리지 않고, 근사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말도 잘 들려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그냥 쉬고 싶었다.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멕이 딱 풀려버렸다.
병을 알자마자 병이 난 것처럼,
주말 부부의 금쪽같은 휴일을, 바늘하나 설 수 없을 만큼의 내 예민함으로 다 보내버렸다.
전전긍긍하는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너무 짜증스러웠다.
모든 게 다...
나만 불행한 것 같았다.
새 남자 친구가 생겨서 웃음이 헤퍼진 딸도 미웠고,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 아들도 너무 미웠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남편도, 뭔가 맘에 들지 않았다.
내 맘이 삐뚤어진 것이다.
카페에 가도 모두들 행복해 보인다.
이젠, 나보다 더 많은 나이의 여자들에게 눈길이 간다.
저 사람도 폐경일까?
저 여자도 갱년기일까?
그런데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일까?
카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불행했으면 좋겠다.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왜 이렇게 날이 더운 거야.
날이 더운 걸까? 내 몸이 더워지는 걸까.
12만 5천 년 동안 가장 더웠던 날.
내 인생을 통틀어 더럽게 더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