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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28. 2024

미스터 알츠하이머의 상념

mayol@행화촌 21. 삼계탕과 의사님

 “자네 이름이 뭐라고?”

 “아, 지호경이요.”

 “어, 그래 호경이.”

 “삼계탕은 맛이 어떠세요?”

 “먹을만하네.”

 “그 누구야. 성국이 형님은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아냐, 전화는 받아.”

 “예? 제 전화만 안 받는 모양이지요. 하하.”

 “그럴 리가. 아무튼 그 친구 치매가 왔다고 하더라고.”

 “아, 그러시구먼요. 저희 선배 한 분은 마나님이 치매가 와서 아주 생고생이랍니다.”

 “병원에 들어가지 왜 생사람을 고생시켜.”

 “그게 기억이 나다가 말다가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이에요.”

 “그럴수록에 빨리 집어넣어야 가족들이 살지. 그러다가 다 죽어.”

 “그나저나 삼계탕은 맛이 어떠세요?”

 “먹을만하네.”

 “제가 예전에 사업할 때 도움을 주던 기현회장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뭐? 그 양반이?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하게 다니시더니.”

 “멀쩡하시긴요. 그나마 기사가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아예 손발이 떨려서 걷기도 힘드셨어요.”

 “그러게. 그렇게들 순서를 밟아 가는구먼.”

 “그래도 선생님은 아직 건강하시니 천만다행입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갑자기 제 이름은 왜요.”

 “생각이 안 나니까 그렇지. 이름이 뭐라고?”

 “어… 제 이름이… 그러니까…”

 “아, 그래. 기현이라고 했지.”

 “하하. 참, 선생님도. 아시면서. 그나저나 삼계탕 맛이 어떠세요?”

 “먹을만하네.”


 연세가 지긋한 어른 둘이 삼계탕을 먹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내가 와본 게 거의 십 년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 식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쉬지않고 주름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반찬은 여전히 신선하고 맛이 있다.

 벽면에는 빙허각 이 씨가 1900년대 초에 순한글로 빼곡히 기록했다는 ‘부인필지’가 액자에 걸려있었다.

 거북등껍질처럼 불규칙한 패턴으로 균열이 생긴 식탁 위로 언제나 깔끔한 김치와 마늘무침이 먼저 오르고 잠시 후에 너무 뜨거웠는지 닭살이 채 가라앉지 않은 흑마늘 삼계탕이 그릇에 담겨 나왔다.

오늘따라 닭살 돋은 삼계탕이 낯설게 느껴졌다. 살고 싶어 남긴 흔적일까. 내 팔에도 닭살이 돋았다.

 흑마늘은 단맛과 쓴맛을 다 가지고 있어 먹을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음식이다.

 옆자리의 어른들은 한참 전에 와서 식사를 시작하신 것으로 보였는데 내가 다 먹을 때까지도 수저를 들고 계셨다.


 “그 외 현재자동차 사장 하던 이 말이에요.”

 “응. 그래. 알지.”

 “그이도 치매가 왔다지 뭐예요.”

 “그렀구먼.”

 “그이도 파주 사람이더라고요.”

 “파주라고? 나도 파준데.”

 “하하. 그러게요. 파주 사람이 많아요. 하하. 삼계탕 맛이 어떠세요?”

 “먹을만하네.”


 그때 걸려온 전화를 받은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국이 어르신이요? 아, 네. 식사 중이세요. 호호. 염려 마세요.”


 이런저런 대화를 엿듣고 있으니 나도 치매가 오는 게 아닐까 아니면 진작에 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 놓은 자리를 자꾸 잊어버리거나 생각했던 걸 바로 기억해 내지 못한다거나 깜빡 잊은 게 있어서 몸을 돌렸다가 왜 몸을 돌렸는지 이유를 모르겠는 따위의 증상이 어려서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 치매를 앓으며 살아온 게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치매가 진행 중이었던 엄마와 병원에 간 일이 겹쳤다.


 “아드님과 함께 오셨군요. 아드님은 저 뒤에 앉아 계시고요. 어머니, 제 말이 들리세요?”


 기우뚱한 가발을 떠받치고 있는 땀구멍이 달표면 같은 의사 선생님의 얼굴 중앙에는 손으로 뭉쳐 놓은 듯한 주먹코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에는 동그란 안경이 걸려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의 얼굴을 다정한 미소로 바라보며 질문했지만 엄마는 병원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싫어서인지 고개만 끄덕이시고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어머니, 제게 요즘 있었던 일을 말씀해 보세요. 그래야 제가 증상을 살펴볼 수 있어요.”


 엄마는 의사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어제 그 댁에서 자고 왔지요.”

 “네? 저희 집에서요??”

 “며늘아이가 무슨 말 안 하던?”


 의사 선생님은 진료하다 말고 갑자기 전화기를 찾기 시작했다.

 전화기를 허벅지 밑에 깔아 놓고는 가운 주머니를 뒤지다가는 책상 위에 서류 더미들을 한 참이나 뒤적거렸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코를 가진 형이 떠올랐다.


 '아, 엄마가 혼동 하실만도 하겠다...'


 의사선생님이 휴대폰을 찾는 사이 고개를 돌려보니 원장실 벽에는 이런 문구의 종이가 붙여 있었다.


 [치매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진행을 더디게 하려면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는 게 낫습니다. 낫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더디게 진행되게 하는 게 현대과학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간신히 휴대전화를 찾은 의사 선생님이 댁에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여보 나야. 어제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셨어?”

 “당신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어머니 돌아가신 지가 언제라고!!”

 “뭐? 정말이야??”


 의사 선생님은 확성기처럼 소리가 큰 전화기를 귀에 대고 부인하고 한참 통화하다가 전화기를 접어 다시 허벅지 밑에 꽂았다. 그리고는 흘러내린 안경을 검지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머리를 벽에 기대고 무료하게 앉아 있던 나를 쳐다보았다.


 “어? 거기 누군데 여기 들어와 있어요?”

 “에고, 저는 아들이에요.”

 “뭐라고?”


 의사선생님은 화들짝 놀라 물러 앉았다.

 그날은 셋 중에 내가 제일 멀쩡해 보였다.

 그리고 몇 년 사이 병원은 엄마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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