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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21. 2024

발리의 취객

mayol@골계전 20. 집에 가고 싶어

 여름휴가철이 시작된 것 같다.

 비가 억수로 쏟아붓는대도 트렁크를 밀고 공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한 때는 나도 출국 심사대에 서서 여권을 입에 대고 차례를 기다린 적이 많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마치고 발리로 며칠 간의 휴양을 떠났던 날이었다.



  

  발리의 국제공항 덴파사 Denpasar에 내리면 공항 내에 블랙 캐년 Black Canyan이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산産이었는지 타이완산産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큼한 커피맛이 좋아 발리에 갈 때마다 들르던 집이었다.

 테이블이 서너 개 밖에 없는 작은 커피숍이었고 당시의 덴파사 공항의 크기와 어울리는 아담한 곳이었다.

 그 뒤에 가봤을 때는 공항도 새로 신축이 되었고 카페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이다.

 블랙 캐년의 사장은 중국계 인도네시아 여자로 사업 수완이 뛰어난 분이었고 우리 회사 직원으로 일했던 K와도 친하게 지내던 사이었다.

 발리에 갈 때마다 머물던 숙소 역시 블랙캐년의 여주인이 산 중턱에 소유한 리조트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우붇 UBUD에서 산속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리조트였는데, 성인 남자 키 만한 잎사귀를 드리운 원시림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K를 먼저 소개해야겠다.

 K는 한국인,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그리고 말레이시아인의 피가 골고루 섞인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서양인의 느낌은 전혀 없고 동남아시아 계열의 피를 선별적으로 골라 수혈받은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형이하학적인 느낌이랄까. 영어, 인도네시아어, 말레이어, 중국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내게는 큰 도움이 된 사업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몇 해 전 겨울 인사동에서 만났을 때 K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인사를 하는데 기절할 뻔했었다. "한국은 너무 추워요".


 덴파사 공항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K가 곧 분해될 것 같은 지프를 몰고 나타났다.


 "차 언제 바꿀 거야?"

 "하하. 곧 바꿀 거예요. 봐놓은 차가 있거든요."

 "뭔데?"

 "1970년 대 후반에 생산된 랜드로버 디펜더예요."

 "마이 갓!!"


 클래식카를 좋아하는 취향은 나와 비슷한 K였다.

 K는 소음이 심한 디젤지프차의 변속기어를 연속 만지작 거리며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달렸다. 우붇에 들어서서 원숭이 사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고산지대에 리조트가 있었다.

내가 머물던 고산지대의 리조트 전경이다.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프란지파니 향이 물씬 나는 깨끗한 야외 화장실도 있었다.

 발리섬에는 커다란 분화구가 있는 높은 산이 여럿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공항 주변의 해변이나 원숭이 사원이 있는 우붇 주변까지는 가지만 그 위로는 잘 가지 않던 때여서 정글의 호젓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몸뚱이만 한 잎사귀를 늘어뜨린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 풀빌라를 내려보고 있었고 수영장에 들어가 전라로 수영을 하고 있으면 작은 도마뱀 게코 Gecko가 벽에 붙어 나를 힐끗 쳐다보기도 했다.

 개구리가 수영장으로 뛰어들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도망 나오곤 했다. 그런 때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개구리가 수영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붇주변을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발리는 우리나라의 1960년대의 풍경처럼 깨복쟁이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날은 구운 게와 랍스터가 먹고 싶어 K에게 부탁을 했다.

 채식주의자인 K와 함께 다니면 한 끼에 두 번의 식사를 해야 했다.

 한 번은 비건식당으로 한 번은 잡식주의자 식당으로.

 간단히 비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K는 공항이 멀리 보이는 해변 파라솔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주문을 끝내고 기다리자 내가 좋아하는 구운 게 몇 마리와 두 손 가득히 잡히는 랍스터 한 마리가 코코넛 접시에 담겨 나왔다.

 좋은 음식과 술.

 모든 게 완벽했고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기타를 맨 연주자 셋이 이곳저곳 테이블을 돌며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마주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해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자가 수줍게 앉아 있었다.

 취기가 오른 나는 트리오에게 휘파람을 불며 잔을 흔들었다. 잠시 후 내 앞으로 세 명의 연주자가 다가왔다.


 “You know? It’s now or never?”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연주해 달라고 하고서는 마이크 삼아 포크를 들고 일어서자 K가 슬그머니 일어나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쁜 자식!'

 기왕 벌어진 일, 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열창을 하기 시작했다.


 "(전략, 중략) ... Tomorrow, will be too late. It’s now or never, my love won’t wait~~"


 연거푸 두 곡을 불러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박수소리 삼아 해변의 사람들을 향해 목례를 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해변에는 아베크 avec족들이 가득했는데 모두들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한 잔 두 잔 더 술이 들어가고 취기가 정수리 부근에서 나를 견인해 공중부양이라도 시키는 기분이었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내게는 아주 나쁜 술버릇이 하나 있다.

 그 어떤 누구와 술을 마시던지 상관없이 못 견디게 취하면 무조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 버리는 거다. 반면에 집에서는 난리가 난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쓰러진다든지 아니면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욕실에서 아예 잠이 들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내 술버릇을 아는 사람들은 오해 없이 이해해 주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일 수도 있으니 술이 깨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다. 남들에게 짐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밖에.

 아무튼 발리의 해변에서 취기가 꼭지에 올라 비행기의 꽁무니를 잡고 바다를 막 건너려는 순간 휴대폰에 문자 오는 소리가 들렸다.


 [띵동, 앞뒤가 엇비슷한 대리운전, 고객님의 포인트는 백만천만 점입니당~]


 아, 그런데 이놈의 대리운전 문자가 순간 내 머리에 최면을 걸어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나 술집 앞에 서있던 택시를 잡아탔다.

 너무 취하니 집에 가고 싶더라고.


 "안냐쎄요, 싸쌍님, 광화문으로 가 쑤쎄요. 꺼억~"


 목적지를 들은 택시 기사가 내게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못 알아 듣겠더라고.


 "따무, 이니부칸꼬레아. 맹가파 디 네가라 라인!"

 "에이쒸! 이 양반이 뭐래는고야!"


 인도계 택시기사가 큰 눈을 부릅뜨고 뭐라고 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아니, 이제는 인도 사람들까지 와서 택시를 모네. 이 냥반아, 한국말을 배워서 운전을 해야지 뭐라는 거야, 이 냥반야! 그리고 운전수가 왜 그쪽에 앉아있어. 왼쪽으로 와야지!! 어라? 운전대도 없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개구리가 수영하고 있는 정글 리조트 침대에 누워있더라고.

 해변에서 내가 보이지 않자 K가 맨발로 나를 찾아 헤맸다고 했다.

 그때 가게 앞길이 소란스러워 가 보았더니 내가 택시기사랑 옥신각신하고 있었다나.

 어우, 창피해.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발리를 찾았지만 K는 나를 해변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택시가 안 다니는 산 중턱에 있는 오바마 obama라는 치킨집에서 맥주와 고기를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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