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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l 14. 2024

길 잃은 신神

mayol@골계전 19. 걱정 많은 피조물

 길 잃은 사내아이를 부모님께 찾아주고 오는 일이 있었다.

 지방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일을 보고 나오는데 한 아이가 나를 향해 멈칫멈칫 다가왔다.


 "아저씨, DH빌딩에 데려다주세요."

 

 말투로 봐서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린 데다가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바람에 오가는 차들의 소음에 묻혀 몇 번이고 귀를 들이대고 다시 물어야 했다.

 아이의 몇 가지 표현을 조합해서 주소를 확인해 보니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약 한 시간은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보호자에게라도 연락을 취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휴대폰에는 유심칩도 없었고 연락처나 통화기록도 없었다. 몇 시간의 일정을 포기하기로 하고 아이를 조수석에 앉혀 안전벨트를 매게 했다.

 아이의 이름은 어떤 영화배우의 이름과 같았다.

 엄마가 급한 일이 있어 아이 혼자 병원엘 보냈는데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들여보다가 도착지를 지나쳐 무려 한 시간 가까이를 더 달려온 것이었다.

 아이의 어눌한 태도에 바쁜 버스 기사는 짜증을 냈고 결국 아이를 길에 내려주고 떠나버렸다.

 아이는 집을 찾아 한없이 걷다가 마침 정차해 놓은 차를 향해 길을 건너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병원 이름을 간신히 기억하고 있던 아이의 말을 믿고 낯선 길을 한참을 달려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호사를 만나 아이의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아이를 맡기고 돌아올 수 있었다.

 공치사를 받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인계받은 부모로부터는 감사하다는 연락조차 없었고 아이의 엄마에게 인계했다는 간호사의 전화뿐이었다.

 착한 아이는 병원까지 가는 내내 불안해했었다.

 휴대폰을 들여보다가 내릴 곳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 아빠가 혼낼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염려하는 아들의 폰에 긴급연락처도 입력해 놓지 않은 것은 왜일까.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하지만 아이의 말을 되새기면서 나도 모르게 오만가지 생각으로 속상했을 뿐이었다.

 상냥한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신이 자신의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신 중에는 눈이 안 보이는 신도 있을 거고 다리를 저는 신도 있을 거고 틀니를 끼고 있는 신도 있을 거고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는 신도 있을 거고 버스에서 내릴 곳을 놓치는 신도 있겠지.

 그날은 신 하나가 길을 잃었고 나는 그 길을 찾아주고 오는 걱정 많은 피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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