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골계전 33. 'ㄹ'과 'ㅌ'
날개 - 이상
…… 중략 …… 안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시나 네시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십팔十八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 치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十八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안해(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안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안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안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 이상의 <날개> 중에서.
앞집 옆집 뒷집 다른 여자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는 이상이 자신의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무능한 남자가 여자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그것에 변명이 필요하거나 혹은 해명을 요구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도 싶다.
이상의 <날개>가 가지는 극단적인 체념은 이카루스의 추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기 위한 도전이 이카루스의 날개라면, 이상의 날개는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 위한 궁극의 희극이니까.
언젠가 글을 쓰던 중에 이상의 '날개'를 '낱게'라고 오타를 날린 적이 있었다.
가뭇 거리는 노안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받침이었다. 거기에 내가 쓴 시까지 곁들였으니 걸작 아닌 걸작이었다.
낱개 - 마욜
홑씨가 낱개를 활짝 펴고 봄볕에 풀풀 날린다
접히지 않는 그의 낱개
바람이 그쳐야 텃밭이던지 돌밭이던지 낙하하는
접히지 않는 낱개다
오늘도 낱개를 달고
바람을 탄다
접을 수 없는 낱개는
무풍지대의 고립을 향해 여전히
파르르 하다
새삼 이상의 <날개>를 떠 올리며 나의 <낱개>를 생각한다.
그이가 없으면 낱개나 다름없는 나다.
정작 안해에게 필요했던 날개를 제 등짝에 붙이고 뛰어오르려는 시인의 의도가 석연찮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선 아내의 직업조차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상과는 달리 그녀의 직업과 더불어 앞집 옆집 뒷집 등 십팔十八가구 이상의 여자들의 얼굴 및 취미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기억해 두려고 한다.
물론 그녀를 포함한 이웃집 여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잊지 않도록 명함관리도 철저히 할 생각이다.
일상의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셔도 좋다.
하루 두 번 씻기
밥 먹고 밥그릇에 물 부어 놓기
떨어진 반찬 바로 줍고 닦기
욕실 청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기
세차는 기본
양치하고 잠자리에 들기
아프지 않도록 운동하기
옷 벗으면 속옷 구별해서 세탁기에 집어넣기
돈은 벌어다 주고 주는 용돈 아껴서 선물하기
셔츠 빨아 털어 널기
돈 못 벌면 집 나가기
...
...허...ㄹ
여튼, 날개 반납합니다.
어여 떼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