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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요 Aug 13. 2021

보통의 삶을, 사라

인어공주

  심장이 딱딱해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따가웠다. 심장이 타고 타다가 더는 타 버릴 게 없게 되면 딱딱해지나 보다. 딱딱한 심장은 사라의 웃음과 울음을 집어삼켰다.

  “아앙앙... 앙앙 앙앙.”

  삭이가 울기 시작한다. 이 시간을 기억이라도 하는지 항상 우는 시간이 같다. 한 달 전의 사라 라면 삭이와 같이 울었을 것이다. 울음에는 전염력이 있어서 따라 울게 된다. 한참 울다 보면 명치끝에서부터 시작한 뭔가가 목을 타고 툭 하고 내뱉어지는 게 꽤나 시원한 느낌이 있다. 이제는 그 느낌마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라는 열여덟 살이다. 삭이는 생후 50일 아기다. 사라는 삭이의 엄마고, 삭이는 사라의 아들이다. 보통의 엄마와 아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세상에는 저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오색빛깔 이야기로 점철된 인생들이 있다. 사라와 삭이는 그들만의 색깔로 빛나고 있다. 다르지만 틀리지 않는 이야기다.

  오늘은 삭이가 다른 날보다 유난히 길게 운다. 지난 49일 동안 이렇게 심하게 울었던 적이 있었나? 그래도 냉큼 달래주면 안 된다. 삭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 약하게 자라서는 안 된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강하고 독하게 살아야 한다. 사라는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문다. 숨넘어갈 듯 울던 삭이는 눈물 콧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 흥건하게 잠들었다. 사라는 그런 삭이를 토닥여주려고 손을 뻗었다가 이내 멈추고 만다.

  사라가 선잠이 들었을 무렵 그가 돌아왔다. 그는 늦은 밤에 나갔다가 새벽이나 아침에 들어오는 날이 잦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 들었다. 혹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변하는 사람이라면, 그전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얼마든지 가면을 쓸 수 있다.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진심이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가면을 쓰기란 퍽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라 엄마도 사라를 품었던 열여덟에 청소년부모가 되었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매서웠다. ‘사고 친 애’, ‘까진 애’, ‘불량한 애’로 낙인 도장이 쾅쾅 찍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외출할 때마다 뱃속의 사라를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나갔다. 사라 엄마에게 사라는 보통의 삶을 빼앗아 가 버린 존재였다. 사라가 태어난 날에 사라 엄마는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이런 사라에게 생일은 365일 중 스킵하고 싶은 날이다.

  아침 해는 반지하 창문 너머에도 햇살 한줄기를 넣어준다. 사라는 햇살을 등지며 옆으로 눕는다. 5평 남짓 반지하 방에 사라와 삭이 그리고 그가 나란히 누워있다. 밤의 어두움으로 덮었던 배경들이 하나둘씩 제 색깔을 찾게 된다. 방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여러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부터 이 집에 있었는지 모를 물건들이 뒤엉켜 있다. 그중에는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인어공주 동화책도 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랑의 순환. 살아온 날들 동안 사라는 대가 없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사랑받기 위해 항상 무언가를 노력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사람 눈치 봐야 했다. 사라는 그에게서 버림받을까 봐 두렵다.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도무지 사랑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함께 살고는 있지만 떳떳하게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고, 결혼한 것도 아니라 돌아서면 남남이다. 그래서 그가 하자는 대로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아아아앙.. 앙앙 앙앙.”

  삭이가 자다가 놀랬는지 울기 시작한다. 그는 화를 내며 욕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삭이는 더 크게 울어버린다.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난 그는 삭이 앞에 선다.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삭이를 둘러싼다. 삭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진다. 숨넘어갈 듯 울던 삭이는 멈칫하더니 가쁜 숨을 몰아쉰다. 사라는 차마 그 모습을 눈 뜨고 볼 수 없기에 벽에 바싹 기대 딱딱한 심장을 툭툭 칠뿐이다.


   “걱정 마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몽글몽글한 말이다. 사라의 심장에 플러그가 연결된다. 사라의 모든 감정은 타인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라 꽁꽁 묶어서 숨겨야만 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항상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니까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스트레스였다. 십 팔 년 동안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굳어져 버린 사라의 세계이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돼요. 내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예요. 건강하게 우는 거, 이것부터 출발인 거 같아요.”

  이분은 청소년부모 지원 센터의 대표님이다. 아직 몇 마디 이야기 안 나눴는데 이분에게는 심연의 껍데기까지 툴툴 털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굳었던 사라의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라의 오늘 아침과 오늘 저녁의 풍경은 참으로 생경하다. 아침에는 미혼모 네트워크라는 곳이었고 저녁에는 청소년부모 지원 센터라는 곳이다. 사라는 그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112 다이얼을 누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의 고민이 있었다. 그를 떠난다면 사라는 물거품이 될 것 같았다. 방 안에 너덜너덜하게 굴러다니던 인어공주 동화책은 사라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엄마의 흔적이다. 인어공주의 맨 마지막 장은 찢어진 지 오래다. 사라는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입으론 인어공주는 말도 안 되는 사기 이야기라 하면서도 이사 때마다 잊지 않고 꼭 챙겨온 책이다.

사라와 삭이를 둘러싸고 있던 어두움이 한 겹 걷혔다. 그렇게 그와 분리되었다. 그가 사라지면 사라도 물거품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 명치끝에서부터 시작한 뭔가에 왈칵 눈물이 난다.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사랑이 진행형일 때야 내 사랑만은 특별할 것 같지만, 내 사랑 역시 유효기간은 있다. 찐사랑이라 못내 믿고 싶어서 상처 위에 덕지덕지 발라 놓은 사랑의 합리화가 뜯기고 흩어져 공기 중에 나부낀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사랑은 전부 아니면 전무이다. 사랑하거나 이별하거나 다. 중간은 없는 거다.

  오늘 사라는 새로 태어난다. 청소년부모 지원 센터의 도움으로 ‘119 응급하우스’에 당일 입소하게 되었다. 당장 돌아갈 집이 없으므로 이제 사라와 삭이의 집은 여기다. 더는 어두컴컴한 5평의 반지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혹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제가 부담해야 할 게 있을까요?”

  “아? 주거비요? 민간지원으로 혜택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의식주 전부가 무료예요. 혹시 돈 때문에 고민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비밀보장이 되니까 진짜 걱정 마요.”

  불러도 불러도 아무도 듣지 않는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으면 때로는 뭐가 맞는지? 뭐가 틀리는지? 헷갈리게 된다. 그러다 그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 맞는 것도 틀리고, 틀린 것도 맞을 때가 있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희뿌연 색깔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는 대신 다리를 얻었다. 사라는 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보통의 삶을 포기한 대신 삭이를 얻었다. 인어공주와 사라는 서로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길로 가든지 맞고 틀리고는 없다. 다만 지름길이 있고 한 바퀴 삥 돌아가는 더딘 길도 있다. 빨리 가더라도 느리게 가더라도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선택한 길 끝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삶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사라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롯하게 내 감정으로만 채워본다. 이윽고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눈물이 나는데 덩달아 웃음도 나온다. 참으로 미묘한 느낌이다. 사라는 유모차를 세우고 곤히 잠든 삭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삭이의 얼굴을 빈틈없이 보고 또 본다.

이제 열여덟 ‘이사라’이자 ‘이삭’ 엄마로 보통의 삶을 살아,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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