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편의점 진열장 냉장고에 참치마요 스팸마요 에그마요 명란마요 워리마요 삼각김밥들이 각을 잡고 서 있다.
“아이참, 이건 내 자랑 같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삼각김밥의 전설은 뭐니 뭐니 해도 나 참치마요지! 삼각김밥의 시작은 참치마요로부터지.”
“훗, 스팸이야말로 밥도둑이지. 밥과 스팸과 김. 이 세 가지 맛의 균형 있는 조화. 이 조합은 말해 뭐해?”
“에그머니, 언제 먹어도 어디에 넣어도 맛있는 계란과 마요를 모르시나봐? 빵에 넣어도 맛있고 밥에 넣어도 진리지.”
“푸핫, 요즘은 명란이 대세 아닌가? 명란이 얼마나 맛있으면 시리즈 상품으로 나오잖아. 명란과 마요는 짭조름함에 고소함까지. 한 입 먹으면 절대 멈출 수가 없지.”
삼각김밥들은 저마다 자기 자랑에 쉴 틈이 없다. 그나저나 저기 구석 쪽에 처음 보는 삼각김밥이 우두커니 서 있다. 신상품인가?
“어? 거기 누구? 혹시 신입이야? 신입이면 이 선배님들께 먼저 인사를 해야지. 얼굴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워?리? 워리마요? 넌 대체 무슨 맛이래?”
진열장 냉장고 맨 구석쯤에 있던 워리마요가 진열장 앞으로 쭈뼛쭈뼛 걸어 나온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이야기 나누는 중에 차마 끼어들 수 없어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한 입 가득한 행복! 먹자마자 맛있는 행복! 워리마요라고 합니다. 저는 참치김치볶음에 계란 옷 입힌 스팸이 들어가 있고, 밥 알 속에 명란 알갱이도 뿌려져 있습니다.”
선배 삼각김밥들은 워리마요를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린다. 그때였다. 딩동 딩동 벨 소리가 울리며 편의점 현관문이 열린다.
“어서 오세요. 멜로25입니다.”
아기 띠를 맨 여자 손님이 들어온다. 한참 동안 진열장 냉장고 속 삼각김밥들을 바라보다가 참치마요를 집어 든다. 손님에게 선택받은 참치마요는 한껏 우쭐해져서 자랑 한마디 하려는 순간, 여자 손님은 가격을 보고 참치마요를 내려놓는다. 잠시 후 고민하다가 옆에 있던 스팸마요를 집어 들었는데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가격을 보고 내려놓는다.
‘요즘 삼각김밥은 모두 천원이 넘는구나.’
여자 손님은 어깨 밑으로 살짝 내려온 아기 띠를 올려 매면서 구석에 있던 워리마요와 눈이 마주친다. 워리마요 얼굴에 쓰여 있는 글귀를 본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삼각김밥은 없었다. ’워리마요‘ 가격은 걱정마요! 천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맛있는 반찬을 모두 담아 밥 한 공기 양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픽미 픽미 워리마요.’
여자 손님이 워리마요를 홀린 듯 집어 들자, 선배 삼각김밥들은 말도 안 된다는 눈빛들을 주고받는다. 원래 신상품은 맛에 대한 입소문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손님들이 바로 선택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어? 이건 880원이네. 저기요, 이 삼각김밥은 진짜 880원이 맞아요?”
“아, 네 손님. 그 워리마요 는요, 저희 멜로25 편의점 PB상품이라고 자체 상표예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서만 팔아요. 밥 양과 반찬 질은 높이고 금액은 낮췄어요.”
편의점 직원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주니 여자 손님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기가 찾아든다.
딩동 딩동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편의점 현관문이 열린다. 얼굴에 ‘나는 초등학생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남자아이가 헥헥거리며 들어온다.
“아저씨, 이걸로 여기서 사 먹을 수 있는 거죠?”
남자아이는 핸드폰 화면을 직원에게 보여준다.
“네, 희망급식 바우처 카드 맞아요. 친구가 점심밥으로 먹고 싶은 거로 골라오면 돼요.”
남자아이는 그제야 직원을 향해 씩 웃어주고 곧바로 삼각김밥 진열장 냉장고로 향한다.
“에그마요 팀장님, 저 어린이는 아무래도 우리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참치나 스팸이나 명란보다 우리 에그마요가 어린이들 입맛에는 딱 이잖아요.”
에그마요 팀장 삼각김밥 뒤로 1열로 쭉 서 있는 에그마요 팀원 삼각김밥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아이는 고민할 것도 없이 스팸마요를 두 개 집는다.
“역시! 어린이 입맛에는 우리 스팸마요지. 자자, 뒤에 대기하고 있는 스팸마요 팀원들 앞으로 2보 전진!”
남자아이는 스팸마요를 집으면서 옆에 워리마요와 눈이 마주친다. 워낙에 호기심이 많은 남자아이는 워리마요의 얼굴의 글귀를 읽더니 스팸마요 두 개를 바로 내려놓고, 워리마요 세 개를 집어 든다.
“에? 아니야, 아니야.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신상품이 오자마자 이렇게 빨리 판매된다고? 이건 우리 멜로25 편의점 역사상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스팸마요 삼각김밥들은 선택받았다가 바로 거절당한 아픔에 자기들끼리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그 소리가 들릴 리 없는 남자아이는 워리마요 세 개와 컵라면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친구, 이거면 점심식사가 되겠어요? 아! 그리고 워리마요는 신상품 행사로 2+1인데 잘 골랐네요. 이거 먹으면 든든하겠어요,“
”네, 맞아요. 새로 나온 거라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2+1이면 무조건 사야죠. 750원짜리 컵라면 두 개까지 샀는데 3,260원 밖에 나오니까. 이건 완전 행운이에요. 할아버지랑 같이 먹을 건데 안 매우면 좋겠어요. “
편의점 직원은 멜로25 편의점 봉투가 아닌 일반 검정 봉투에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담으면서 이야기 한다.
”친구, 원래 규칙은 이 물건들 담으려면 편의점 봉투를 사야 하는데, 이건 아침에 형이 한번 쓴 봉투인데 깨끗한 거니 그냥 여기에 담아줄게요. 그리고 워리마요 신상품 행사로 생수도 받을 수 있으니 저기 냉장고에서 생수 3병 가져오세요.“
남자아이는 나이스를 외치며 여닫이 냉장고 문을 힘차게 연다.
딩동 딩동 벨소리가 울리며 편의점 현관문이 아주 천천히 열린다. 멜로25 편의점 안에 있는 여자 손님과 남자아이 그리고 편의점 직원은 일제히 현관문 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저...저기. 저 지금은 노숙인 아닌데, 들어가도 될까요? “
훌쩍 키만 크고 비쩍 마른 남자 손님이 멜로25 편의점 현관문을 오른 손으로 잡은 채 바깥에서 물어본다.
”그럼요 물론이죠. 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 “
편의점 직원은 재빠르게 계산대에서 뛰쳐나와 현관문을 활짝 열어주며 남자 손님을 맞이한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싼 것 중에 아무거나 먹을 수 있을까요? 이런 곳은 처음 와서요. 그리고 저 진짜 지금은 노숙인 아니고 일하면서 쪽방 촌에 살고 있어요.“
남자 손님은 무엇이 불안한지 자꾸 주위를 살펴보며 손을 덜덜 떨고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 제가 저렴한 것 중에서 맛있는 거로 골라드릴게요. 잠시 여기 자리에 앉아 계세요. 여기는 편의점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리니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앉아 계세요. “
잠시 후 직원은 워리마요 삼각김밥 세 개와 생수 3병 뜨거운 물을 부어 맛있게 익어가는 컵라면을 가져온다.
“아이쿠,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여기서 먹어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그리고 저는 사장님 아니고 알바 생이에요. 여기 사장님께서는 손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귀한 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멜로 25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의점 창문 밖으로 별 하나가 길게 줄을 이루며 떨어져 내린다. 그 별은 멜로25 편의점 간판에 내려 앉아 반짝반짝 빛난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