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요 Nov 06. 2022

이제 겨우, 헤아림

왕구와 므앙이 이야기

  므앙이는 입만 열면 “짜증나.” 라는 말이 입버릇이 되었습니다. 진짜 짜증 날 때도 “짜증나!” 별로 짜증이 안 날 때도 “짜증나!” 짜증난다고 계속 말을 하면서 귀로 들으니까, 짜증이 나지 않아도 괜히 짜증이 날 것만 같습니다. 요즘에는 언니 오빠들에게 배워서 단어 앞에 ‘개’를 붙이게 되었습니다.“개좋아.” “개맛있어.”

  “므앙아, 나는 진돗개인데도 '개' 를 안 붙이고 말하는데 너는 왜 자꾸 개를 붙여? 우리 개들을 좋아해?”

  “아 몰라. 그냥 언니 오빠들이 쓰니까 나도 따라 쓰는 거야. 이런 걸 유행이라고 하잖아. 유행은 따라하는 거야. 넌 그것도 모르냐? 그러니까 네가 안되는 거야.”

  오늘도 므앙이는 왕구 얼굴에 대고 차가운 온도의 말을 내뱉습니다. 왕구는 므앙이가 이럴 때마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습니다. 언어에는 온도가 있어서 차가운 말은 하면 할수록 마음이 얼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평소에 왕구는 므앙이 말을 잘 들어줍니다. 그래서 왕구는 므앙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햅쌀’과 ‘익힌 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왕구는 가끔씩 므앙이를 기쁘게 해 주려고 햅쌀과 익힌 콩을 므앙이에게 갖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므앙이는 한 번도 제대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먹으면서 뭐라고 중얼댄 적은 있는데, 그게 고맙다는 것인지 맛있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10월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고 미세먼지도 없는 상쾌한 아침입니다. 그런데 므앙이는 화가 단단히 나서 아침부터 식식대고 있습니다. 므앙이는 왕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

   “야! 왕구! 내가 오늘 아침에 분명히 아침에 일어나면 깨워 달라고 했냐? 안 했냐? 내가 늦잠 잘 거 같아서 불안하니까 너한테 모닝콜을 부탁한 거잖아. 너는 내 말을 귀로 들은 거야? 코로 들은 거야? 기분 나빠서 더 이상 통화하기도 싫다. 끊어버릴거야! 흥. 뚝.”

  왕구는“여보세요”의 “요” 자도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므앙이가 쉴 새 없이 화딱지를 내는 바람에 대답도 못하고 전화기만 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왕구가 잠자기 직전에 므앙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므앙이는 늦은 밤에 전화한 것에 대해 예의상이라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내일 아침 7시에 모닝콜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왕구는 너무 졸린 나머지 잠결에 알았다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고, 꿈나라 급행열차를 탔습니다. 비몽사몽 중에 말한 것이라 그게 꿈인지 현실인 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왕구가 그날 너무 피곤해서인지 꿈도 안 꾸고 푹 자다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므앙이는 이 모닝콜 사건으로 인해서 왕구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므앙이는 왕구가 했던 말은 자주 기억 못하면서 정작 본인이 한 말을 왕구가 까먹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 것처럼 차가운 말로 왕구의 마음을 차갑게 얼려버리고 맙니다. 나중에 사과할 때 하는 므앙이의 변명 아닌 변명은, 자신이 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합니다. 왕구를 너무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만큼 실망도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왕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왕구는 오로지 자신하고만, 그러니까 왕구와 므앙이로만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므앙이의 이런 생각과 주장이 가끔씩 왕구를 숨막히게 합니다. 왕구는 웬만하면 므앙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각자 좋아하는 방식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거지, 므앙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왕구와 므앙이는 지난 번 통화 이후로 서로 연락을 안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므앙이는 자주 삐치기는 하지만 하루를 넘긴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꽤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벌써 삼일 째 므앙이는 왕구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집으로 가던 므앙이의 발걸음이 멈춰 섭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왕구입니다. 자신 아닌 다른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자, 므앙이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감정이 올라오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므앙이는 발걸음을 돌려서 어린이 놀이터 뒤쪽으로 갔습니다. 왕구를 보자마자 화가 잔뜩 났지만 왕구가 므앙이 자신 아닌 다른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므앙이는 최대한 근처로 가되 들키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습니다.

   “왕구야, 솔직히 말해서 므앙이는 매번 좀 제 멋대로 지 않냐? 모든 일이 자기 맘대로야. 밥맛없어 진짜 별로야.”

   “맞아! 므앙이는 내가 좀 알지. 걔는 원래 예전부터 그랬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화내고 소리 지르고. 상대방 배려도 안하고, 너무 무섭고 이상한 애야.”  

  아까부터 듣기만 하고 말이 없던 왕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내가 아는 므앙이는 그렇지 않아. 물론 나랑 가끔씩 싸우기는 하지만... 친구끼리 안 싸울 수는 없잖아.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지. 한 번도 안 싸운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닌 거 같아. 친구니까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할 수 있는 거 같아. 안 그래?”

  듣고 있던 두 친구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린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이건 당연한 거야. 우리는 므앙이의 한쪽만 보고 므앙이를 판단 할 수 없어. 므앙이 안에는 여러 모습의 므앙이가 있는데, 단점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친구로서 잘못된 태도인 거 같아.”

   “으아아아아앙”

  어린이 놀이터 뒤편에서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란 왕구와 친구들은 울음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 봅니다. 그 곳에는 더욱 크게 울고 있는 므앙이가 있습니다.

   “아이쿠, 깜짝이야. 너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거야? 우리 이야기 모두 엿듣고 있었던 거야?”

   “미...안해.”

  므앙이가 왕구에게 진심을 전달합니다. 왕구는 므앙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 것 같습니다. 므앙이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립니다.

   “알았어, 알았어. 므앙아. 네 마음 이제 뭔지 알았으니까 이제 제발 그만 울어. 너무 많이 울면 머리 아프단 말이야. 이제 뚜욱!”

  므앙이는 안 울려고 하는데 한 번 시작된 눈물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왕구한테 미안한 마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창피함 등등 여러 가지 마음이 섞이고 섞여서 복잡한 감정입니다.

   “근데 므앙아, 진짜 친구는 친구가 좋아하는 것은 해 주려고 하고,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헤아려 주는 거래. 실은 네가 내 얼굴에 대고 소리 지르면서 차가운 말을 내뱉을 때면, 내 마음은 차갑게 얼게 돼. 앞으로는 화가 나도 조금만 참고, 따뜻한 온도로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니?

   “알……겠어. 나도 노력해 볼게.”

  므앙이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므앙이의 어깨를 왕구가 토닥여 줍니다.

   “므앙아, 나도 이제 겨우 너를 좀 알 것 같아.”


  이 세상에 특별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 똑같지 않아서 특이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특별합니다. 왕구와 므앙이처럼요.

작가의 이전글 걱정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