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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요 Sep 06. 2021

뒷북쟁이

  감나무의 초록색 감들이 배꼼 고개를 내밀며 세상 구경을 합니다. 까치들은 집집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세상 구경을 합니다.

  “깍깍깍깍.”

  까치는 지솔이네 할아버지 집을 향해 소리칩니다.

  “소용없는 짓이야 깍. 아까 전화 왔었다니까 깍깍.”

  까치의 날개가 축 늘어집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헛수고일까요? 요즘 까치는 동네방네 소식통에서 뒷북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 깍. 사람들이 언젠가 우리 진심을 틀림없이 알아 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깍깍.”

  까치아저씨는 까치의 날개를 토닥여 주더니 날아가 버립니다. 아침식사를 마친 할아버지와 지솔이는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지솔이는 감나무의 까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는데 까치는 왜 짖어요?”

  “, 그건 반가운 손님 온다고 그런  본디, 벌써 전화 받았잖니? 까치가 한발 늦었구먼. 허허.”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근데요 할아버지. 참 이상해요. 반가운 손님의 소식 전해준다는 목소리가 힘이 없는 거 같아요.”

  할아버지는 감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합니다.

  “너도 인젠 나처럼 쓸모없어졌구먼.”

  지솔이는 할아버지의 우물거리는 소리가 답답해서

  “뭐라고요? 크게 좀 말씀해 보세요. 잘 안 들려요.”

  “요 녀석! 벌써 너도 나처럼 귀 먹은 게냐? 됐다 됐어. 이 녀석아.”

  지솔이의 머리에서 불이 납니다. 꿀밤은 언제 맞아도 뜨거워요. 지솔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까치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까치야 힘내. 한 발 늦으면 어때? 그래도 난 너의 목소리가 제일 좋아. 전화벨 소리보다 더.”

  “고마워 지솔아. 깍깍깍깍.”

  방으로 들어가려던 지솔이는 깜짝 놀라 뒤돌아봅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거야? 정말?”

  “깍깍깍깍.”

  까치는 다음 소식을 전하러 바쁜 날갯짓을 합니다.

  “할아버지, 까치가 제 말에 대답했어요. 완전 신기해요.”

  지솔이는 방방 뛰면서 할아버지를 찾아 마당으로 나갑니다. 마당엔 따사로운 햇볕이 쨍쨍 내려 쬡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르르릉.”

  전화벨이 숨 가쁘게 울려댑니다.

  “할아버지! 전화요 전화! 네? 제가 받으라고요?”

  할아버지는 그새 텃밭에서 김매다 왔나 봅니다. 허겁지겁 들어오시는데 검정고무신 속에 흙이 가득합니다.

  “여보세요? , . 잠시 만요. 할아버지 전화 받으세요.”

  전화벨이 울릴 때부터 지솔이는 이미 할아버지 찾는 전화인  알았습니다. 여긴 산골이고 할아버지 댁엔 여름방학에만 놀러 오기 때문에 친구들이 여기로 전화  일은 없습니다.

  “뭣이라? 참…말인가? 이런. 벌써 가다니…난 여태 작별 인사 준비도 못했는디…급하기도 허지. 그 놈의 성질하고는.”

  할아버지의 고랑진 주름 길을 따라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눈물에 덩달아 맑은 콧물이 나오자 팽~하고 코를 푸는 할아버지. 지솔이는 할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봅니다. 통화가 끝난 뒤 한동안 수화기를 들고 아무 말씀이 없는 할아버지의 손등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조심스럽게 지솔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바라봅니다.

  “할. 아. 버. 지.”

  할아버지는 그제야 수화기를 내려놓고 긴 한숨을 내쉽니다.

  “어차피 한번  때가 있음  때가 있긴 허지. 헌디말이다. 하나 둘씩 보낼 때마다  가슴팍 깊은 데가  이리 아픈 건지. 친구  하나가  가버렸단다. 죽마고우였는디 병원에 간다간다 말만 철썩 같이  놓고 한번을  가봤네올 여름 안에  한번 갈랬더만…”

  소식을 전하고 온 까치가 감나무 가지에 앉습니다. 감나무 너머 전깃줄에 까치아저씨도 어느새 와서 앉아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깍? 할아버지가 심각하게 보이네요. 깍깍.”

  “응 할아버지 친구 분이 돌아가셨나 봐 깍깍.”

  까치는 할아버지가 안쓰럽습니다. 얼마 전에 까치도 친구를 잃었거든요. 최씨 아저씨네 과수원이 작년에는 흉년이었지만 올해는 풍년이   라고 소식 전해주러 갔다가 졸지에  도둑으로 몰려 돌멩이에 맞아 죽었거든요. 떨어진 배를 발견하고 ‘배가 얼마나  익었나?’ 보려고 고개를 숙였을 뿐인데... 최씨 아저씨는 부득부득 까치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나쁜 새라고 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지난 흉년 탓도 까치들이  익은 배를 쪼아 먹어서 그런 거라고 뒤집어씌우기까지 했답니다.  뒤로 까치는 떨어진 배라고 해도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플지라도 말입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먹지 않을 겁니다.

친구 잃은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할아버지께 용기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 이 시점에 ‘깍깍깍깍’ 하고 소릴 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할아버지, 저기 좀 보세요. 아까 그 까치 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감나무를 쳐다봅니다.

  “까치도 오늘 슬픈 일이 있나 봐요. 아까부터 목소리도 그렇고 지금은 우리만 내려다보고 있어요.”

  “아까 늬 애비 애미가 너 데리러 온다는 소식 전하러 온 게 아니라, 친구 놈이 더 이상 앓느라 고생 안 헌다고 하늘나라 가서 편히 쉬고 있는 게 기쁘다고 까치를 보냈나부다.”

  “깍깍깍깍.”

  할아버지의 멍한 눈이 갑자기 반짝반짝 해집니다.

  “아까  말도 알아듣더니 방금 할아버지 말씀도 알아듣나 봐요. 우와~신통방통한 까치네.”   

  지솔이는 까치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아저씨 깍깍.”

  까치는 전깃줄에서 외발걷기 연습을 하는 까치아저씨를 부릅니다.

   “우린 그래도 행복해요 깍깍.”

  까치아저씨는 갑작스런 까치 말에 하마터면 전깃줄에서 떨어질  했습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서는

   “왜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깍깍?”

   “전화가 우리보다 먼저 반가운 소식을 채 간다고 해도 전화는 반가운 소식만큼이나 슬픈 소식도 갖다 주잖아요 깍. 뒷북이면 어때요? 반가운 소식이란 게 원래 두 번 들어도 기쁘잖아요. 뭐, 깍깍.”

  “그걸 아는 것 보니 까치 너 이 녀석 이제 철들었네. 깍깍.”

  윗동네에서 내려온 경운기가 달달거리며 지나갑니다.

  “뭐라고요? 안 들려요 깍깍.”

 “아이쿠. 늦었다 늦었어! 빨리 서둘러!”

 까치아저씨는 힘차게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영문을 모르는 까치는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야 이 녀석아, 빨리 날아! 까딱하다간 늦는단 말이야. 올해도 지각해서 뒷북 칠 거야 깍깍?”


  오늘은 까치들이 반가운 소식전하는 일 말고 일 년에 한번 다른 일도 겸하는 날이거든요. 음력으로 칠월 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입니다. 오늘도 작년처럼 머리털이 제법 빠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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