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하나씩 열리고 있어요.
당신이 가는 길에 문이 하나씩 열리고 있어요.
라고 쓰여있는 엽서를 샀다. 올해가 시작할 때쯤이었다. 내 올해 목표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었다. 최근의 몇 년을 생각했던 계획이었다. 나는 늘 한국이 아닌 어디선가 일을 하고 싶었고, 그 시작을 꼭 올해에 하고 싶었다. 그 문이 열리길 바라며 나는 그 엽서를 사서 방 한쪽에 고이 붙여두었다.
올해 초에 다니는 회사의 해외 지사로의 이동을 상사와 논의했다. 마침 그 지사로 해외 출장을 나가 있었을 때였다. 나의 다음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언제쯤 어떻게 하자고 동의를 했다. 생각했던 모든 게 눈 앞에 있었다. 한국에서의 내 생활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정말로 내가 가는 길에 문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주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땐 몰랐지. 이 바이러스가 내 앞 날을 이렇게 바꿔놓게 될 줄은. 해외 지사로의 이동을 논의했는데, 그 해외 지사가 없어졌다. 모두가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고 집에서만 일을 하게 됐다. 나도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없어졌다. 아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문이 닫힌 느낌이었다. 내 다음은 바로 저 앞에 있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열쇠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기다리면 상황이 달라질까?
기다릴 수 없었다. 열쇠를 잃었으면 내가 내 열쇠를 만들 수밖에. 그때부터 나는 내 열쇠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한쪽 문이 닫혔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해외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다음 커리어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쉼 없이 이직을 준비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한국에서의 이직이었고, 8년을 한 회사만 다닌 나에게는 첫 이직이었다. 이력서,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가고 싶은 기업을 추려 지원을 했다.
참 여러 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하는 준비까지도 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한다는 건 이렇게 힘들구나. 매 번 깨달았다. 두드려도 답이 없는 곳도 있었고, 나에게 조심스레 조금씩 문을 열어준 곳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나를 향해 활짝 열어준 몇몇 문 중 하나를 골라 다음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문 너머의 이 곳에 (아직까지는) 매우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결국 내가 가는 길에 문이 하나씩 열리고 있다는 건, 내가 그만큼의 노력을 해 온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어떤 문도 공짜로 열리지는 않았다. 내가 두드리고 또 열쇠를 만들어야 문이 열렸다. 닫힌 빗장을 풀고, 또 자물쇠를 풀어내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아직 인생의 문을 다 열어보지도 못했고, 앞으로 열어야 할 문들이 내 앞에 한참 남아있다. 어떤 문은 조금 더 단단할 것이고, 어떤 문은 조금 얇을 수도 있다. 어떤 문은 엽서의 말처럼 내가 가기도 전에 열리고 있을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나는 몇 개의 자동문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어떨 때는 아무리 두드리고 또 열쇠를 만들어도 열지 못하는 문을 만날 수도 있다.
그래도 열심히 이 엽서의 말을 생각하며 문을 열어볼 것이다. 내 앞의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괜찮다. 옆에 다른 문이 있을 수도 있고, 열기 어려웠던 그 문 뒤의 또 그다음 문은 더 쉽게 열릴 수도 있다. 겁먹지도 않기로 해 본다. 지금 열리는 이 문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 것인지는 문을 열어봐야만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