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것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광화문의 교보문고 앞에 걸려있던 글귀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귀는 늘 마음을 울리지만, 이 문구를 봤을 때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보통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왔을 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 지나고 나서야만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의 인생이 나에게 왔다 갔다는 것도, 인연이 끝나고 나서야 꺠닫곤 한다. 만날 때는 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던 사람이 나에게 생각보다 컸던 적도 있고, 함께할 때는 아주 크게 느껴졌던 사람이 지나고 보니 아주 작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무언가가 떠나고 나서야 그 크기를 알게 된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나에게 왔다간 사람들의 흔적들로 채워지고 또 완성되어 왔다.
출근길 플레이 리스트에 담긴 이름 모를 래퍼의 노래, 먹어본 적 없던 레시피의 이국적인 음식, 나는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에 대한 감흥, 낯선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소설, 겪어보지 못했던 직업군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 내가 가본 적 없는 동네에 새롭게 생긴 단골집. 평생 그 사람을 몰랐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그 인연이 끝나고 난 뒤 파편처럼 삶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나를 지나쳐 간 혹은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인연들로 만들어졌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일상과 삶을 내 삶에 겹쳐본다는 것은 이렇게 큰 의미로 남는다. 나는 살아본 적 없는 몇십 년의 인생을 그 사람과 함께함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를 하듯 우리는 겹쳐져 있다가도 서로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기도 한다. 어떤 곳엔 강렬하게, 어떨 때는 또 약하게, 서로의 색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내 인생에 남으며 다시 내 그림이 된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나 혼자 그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결국 든다. 누군가가 없으면 나는 색을 채워갈 수 없다. 결국 그 색을 고르는 건 나지만, 다른 사람이 없이 나 혼자 채워가지는 못한다. 누군가와 만나고 또 그 사람의 무언가로 나는 인생을 채워간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지평선을 넓혀간다. 내가 아는 것들, 내가 살아온 배경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람과 인연 속에서 새로움을 배워간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아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 정현종
누군가가 없이는 내 삶도 완성될 수 없기에, 다음 사람이 오면, 바람을 흉내라도 내봐야지. 하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봐야지. 어떻게 부서졌던 마음이었을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현재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의 인생이 겹쳐졌을 때의 색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