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Aug 31. 2020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것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광화문의 교보문고 앞에 걸려있던 글귀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귀는 늘 마음을 울리지만, 이 문구를 봤을 때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보통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왔을 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 지나고 나서야만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의 인생이 나에게 왔다 갔다는 것도, 인연이 끝나고 나서야 꺠닫곤 한다. 만날 때는 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던 사람이 나에게 생각보다 컸던 적도 있고, 함께할 때는 아주 크게 느껴졌던 사람이 지나고 보니 아주 작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무언가가 떠나고 나서야 그 크기를 알게 된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나에게 왔다간 사람들의 흔적들로 채워지고 또 완성되어 왔다. 


출근길 플레이 리스트에 담긴 이름 모를 래퍼의 노래, 먹어본 적 없던 레시피의 이국적인 음식, 나는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에 대한 감흥, 낯선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소설, 겪어보지 못했던 직업군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 내가 가본 적 없는 동네에 새롭게 생긴 단골집. 평생 그 사람을 몰랐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그 인연이 끝나고 난 뒤 파편처럼 삶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나를 지나쳐 간 혹은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인연들로 만들어졌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일상과 삶을 내 삶에 겹쳐본다는 것은 이렇게 큰 의미로 남는다. 나는 살아본 적 없는 몇십 년의 인생을 그 사람과 함께함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것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를 하듯 우리는 겹쳐져 있다가도 서로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기도 한다. 어떤 곳엔 강렬하게, 어떨 때는 또 약하게, 서로의 색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내 인생에 남으며 다시 내 그림이 된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은 나 혼자 그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결국 든다. 누군가가 없으면 나는 색을 채워갈 수 없다. 결국 그 색을 고르는 건 나지만, 다른 사람이 없이 나 혼자 채워가지는 못한다. 누군가와 만나고 또 그 사람의 무언가로 나는 인생을 채워간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지평선을 넓혀간다. 내가 아는 것들, 내가 살아온 배경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람과 인연 속에서 새로움을 배워간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아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 정현종




누군가가 없이는 내 삶도 완성될 수 없기에, 다음 사람이 오면, 바람을 흉내라도 내봐야지. 하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봐야지. 어떻게 부서졌던 마음이었을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현재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의 인생이 겹쳐졌을 때의 색은 어떨지. 

작가의 이전글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두려움 너머에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