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화를 왜 좋아하지?
내가 언제부터 동화를 좋아했지?
그 생각의 끝은 항상 영국에 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국의 일러스트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는 Helen Oxenbury. 그리고 그녀의 책, We're going on a bear Hunt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첫아이를 키우며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탄으로 이 책을 봤던 기억이 있다. '이 짧은 스토리를 , 어떻게 저리 멋지게 표현했을까.'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길래, 이러한 감성을 가지게 된 걸까.' 심지어, 그녀의 작품을 볼 때의 설렘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요즘이 더 할 수도 있겠다. 하루종일,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를 주고, 힌트를 주는 그림이니 말이다.
이런 일러스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또 다른 부러움이 생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일러스트는 동화 스토리의 표현을 넘어서서, 하나의 생명체 같다. 단순한 그림이 아닌, 진짜 심장박동수를 가진 그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감각으로 느끼고, 내가 감정으로 느낄 수 있게 그들만의 표현으로 고요하게 전달해 주는 듯하다.
바람을 표현한 선 하나에, 나도 바람을 느끼는 듯하고, 엄마 아빠의 뒷모습에, 나도 그들의 난처함을 그대로 느낀다. '아...' 그들의 한탄이 그대로 들려오는 듯하다.
나의 일러스트도 그런 힘을 가졌을까?
헬렌의 일러스트는 나의 일러스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인물을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인물을 잘 그릴까 가 아닌,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그때의 상황의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거기에 더 집중을 하는 편이다. 그냥 집중이 아닌 초집중을 한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일러스트다. 슬픔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아이. 이 아이를 그림으로 만날 때까지, 나는 그 아이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동화 스토리를 읽으며 받은 감정에 빠져 며칠을 살은 듯하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머리색은 무슨 색일까?
머릿결은 곱슬머리일까?
어떤 옷을 좋아하는 아이일까?
왜 이런 슬픔을 가지게 되었을까?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아이의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이 아이가 웃을 때는 어떤 순간일까?
이 아이는 과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할까?
이 아이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을까?
다시 영국 일러스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고 Helen Oxenbury의 작품만 좋아해서 내가 영국 일러스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들을 모아 놓으면, 대부분이 영국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영국의 일러스트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리 결론지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가 수채화를 좋아해서 그럴까?
내가 소묘그림을 좋아해서 그럴까?
내가 사람 일러스트를 좋아해서 그럴까?
내가 동양화의 선그림을 좋아해서 그럴까?
내가 여백의 미를 가진 그림을 좋아해서 그럴까?
이 모든 것을 영국 일러스트가 품고 있어서 그럴까?
이러한 한도 끝도 없는 질문의 끝에 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영국이었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설렘이었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관심이었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부러움이었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호기심이었다.
동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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